정부가 국내 대표적인 석유개발기업인 한국석유공사의 대형화 방안을 마련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석유공사가 지금보다 5배는 돼야한다"고 밝힌 이후 3개월 만이다. 정부와 민간 자금을 합해 총 19조원을 2012년까지 투입해 자산을 현재의 3배 정도인 30조원 수준으로 확충하고 석유·가스 생산량은 6배인 일산 30만배럴로 늘린다는 것이다.
정부의 대형화 방안이 실현되면 석유공사의 생산규모는 세계 93위에서 60위로 껑충 뛰고 석유·가스 자주개발률도 당초 계획보다 7%포인트 증가한 25%로 높아진다.
◆생존을 위해선 덩치 키워야
이재훈 지경부 2차관은 석유공사 대형화 방안에 대해 "신고유가 시대에 대응해 날로 치열해지는 세계적 자원확보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석유개발 기업의 대형화가 절실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세계 각국은 앞다퉈 국영에너지기업을 육성해 자원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어 석유공사의 대형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석유기업인 석유공사의 납입자본금은 4조7천억원 규모로 국내 기업 중에서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세계적 메이저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다.
미국의 석유산업 주간정보지 PIW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석유공사의 생산량 규모는 일산 5만배럴로 세계100대 석유기업 중 93위에 불과하다.
또 이라크는 석유자원 개발 참여자격으로 최소 하루 20만배럴의 생산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경우처럼 부존자원이 부족한 스페인, 이탈리아 등도 정부 주도의 공기업 대형화를 통해 높은 자주개발률을 실현하고 있다.
스페인의 Repsol사는 생산량 세계 28위에 109만B/D, 자주개발률 48%를 기록 중이다. 이탈리아 ENI사는 세계 20위에 174만B/D, 자주개발률 62%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들어 국영기업인 인펙스 중심의 기업인수를 통해 규모의 대형화를 추진하고 있다.
◆탐사광구 확보에서 생산광구 인수로 방향 전환
지경부는 석유공사의 개발사업을 탐사광구 위주로 인수하는 것에서 생산광구를 매입하는 전략으로 수정했다.
이 차관은 "탐사광구에서 매장량을 확인하고 시추하려면 5~7년이 걸린다"면서 "단기간에 자금과 자산규모를 늘리고 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 사례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는 석유공사가 공기업인 만큼 리스크가 큰 탐사광구에 민간기업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위해 생산광구 인수로 바꿨다는 것이다.
아울러 석유 선물시장은 가격이 1년만에 두배 이상으로 뛰어 초고유가 상황이지만 생산광구는 장기 유가전망에 따라 가격대가 형성되는 만큼 지금 적극적으로 인수해도 늦지 않은 시점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이재훈 차관은 "생산광구 가격은 석유선물시장에 비해 상당히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확보하는데 적기일 수도 있다"며 "필요하면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재무적 방법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공사와의 통합 포기
정부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통합하는 방안, 두 회사룰 구댜로 두고 지주회사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이번 석유공사 대형화 방안 발표로 마무리했다.
이 차관은 "현재 33% 이상의 지분이 증시에 상장돼 있는 가스공사와 정부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석유공사를 합병시키려면 자산재평가나 공공 성격을 띠는 석유비축 부문 분리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화학적 결합 부문도 고려돼 결국 자체 대형화 방안으로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현재의 지분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몸집을 키우기로 했다. 정부가 4조1000억원을 출자하는 한편 개발사업 프로젝트별로 특수목적회사(SPC)를 조직해 민간자본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택한 것. 이와 함께 가스공사와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통합에 버금가는 효과를 내도록 했다.
아울러 2012년에 개발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증시에 상장시켜 정부 지원없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경영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다만 상장을 하더라도 가스공사와 마찬가지로 공기업 형태가 유지된다.
이밖에 석유기업을 인수할 때 기술인력도 함께 확보해 석유공사의 개발분야 기술인력을 현재 450명에서 2012년까지 2500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재정 마련 쉽지 않다
하지만 유가 급등에 따라 최근 생산광구 확보가 어렵고 정부 예산을 제외한 15조원의 자금을 5년동안 확보하려는 계획도 예상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한 석유공사의 자본금을 늘리는 과정에서 올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한 것이 적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석유공사에 9647억원을 출자하기로 하고 이중 6000억원은 추경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 가능하다.
앞서 정부와 한나라당은 현재의 고유가 상황이 추경 편성 요건 중 하나인 '경기침체·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추경 형식으로 고유가 극복 대책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석유공사 대형화도 고유가 대책에 포함된다는 설명이지만 5년이라는 장기적인 시간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에 추경을 동원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이재훈 차관은 "이 부분에 대해 관련 당국과 협의를 했으며 현재의 국가재정법으로도 편성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유가 시대에 해외에서 안정적인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일이나 자칫 방만한 공기업 운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