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우리를 관통한 키워드②] 워라밸ㆍ소확행ㆍ패스트힐링ㆍ미닝아웃ㆍTMI

입력 2018-12-28 15:22 수정 2019-01-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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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했던 한해였다. 대외적으로는 역사적인 남북해빙 무드가 본격 진전되는 한편, 사회적으로는 성별 갈등이 급격하게 표출됐던 시기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바라며, 일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고, 여럿보다는 혼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마음속의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컷던 한해이기도 했다.

올 한해 우리의 마음을 관통한 키워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본지가 선정한 10개의 키워드를 소개한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 오늘 회식이라고요? '우리 부장은 미움받고 싶은가봐'

우리 때는 밤낮없이 일을 시켜도 군말 없이 꿋꿋이 버텨냈어. 내 할 일이 끝나도 상사가 퇴근 전이면 묵묵히 책상 앞을 지켰지. 야근은 미덕이고 주말 근무는 옵션이야.

저는 회사 끝나고 운동도 가야 하고, 주말엔 여행도 떠나야 해요. 저녁에 회식한다고요? 점심으로 간단히 대체하시죠. 회사만큼이나 개인의 삶과 행복도 중요하다고 봐요.

'현재를 즐겨라' 뭐 카르페디엠 같은 거야? 사실 연봉이 적고 높고를 떠나서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유명했던 광고 문구인데 기억나요?

OECD는 지난해 일‧생활 균형 지표에서 한국의 '워라밸' 수준을 38개 국가 중 35위인 최하위권이라고 진단했데요. 워라밸은 최근에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된 이후에 '퇴근한 다음에 뭔가 배우면 좋겠다'라고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는 의미에요.

"워라밸 순위가 낮아 안타깝긴 한데 사실 요즘 경기가 어렵잖아. 단순히 칼퇴근만 강조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데?"

근무 시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진정한 워라밸은 가능하지 않아요. 워라밸의 근본은 생산성 향상, 업무 효율성 증대에 있어요.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놔두고 근무 시간만 줄여서는 '무늬만 워라밸'이 되겠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사내 환경도 변화하는 추세에요. 한국 MS는 '프리스타일 워크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워라밸을 위한 문화와 근무환경을 조성했어요. 자신의 업무 유형에 맞는 장소를 선택해 근무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직원 업무 효율성이 15~30% 증가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런 것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회사와 직원 간의 약속이 필요하죠. 회사가 이런 문화를 시도할 때 직원도 개인의 생활만 강조하지 않고 업무에 충실해 회사가 자연스럽게 '워라밸'을 실현하게 만드는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결국 신뢰가 바탕이 되는 거네. 쉬운 말이지만, 어려운 얘기인 것도 알지?"


◇소확행(小確幸) - 파랑새는 ‘네 옆에’ 있다니까?

‘파랑새’라는 벨기에 동화가 있다. ‘틸틸’과 ‘미틸’ 남매(일본어를 다시 번역하는 과정에서 ‘치르치르’와 ‘미치르’란 이름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지만)가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찾으러 여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야. 아시다시피 알고 보니 파랑새는 남매의 집에 있는 새장 속에 살고 있었지.

‘파랑새’가 쓰여진 지 벌써 100년도 넘었으니, 행복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생각은 벌써 한 세기 넘게 우리 사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봐도 될거야. 다만 그 관념을 하나로 묶어주고, 소비트렌드로 인식시켜줄 수 있는 한 단어로 된 키워드가 부재했을 뿐. 그런 고민 속에서 등장한 말이 ‘소확행’이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거대한 부, 드높은 명예, 식지 않는 인기, 안정되고 걱정 없는 삶, 눈부신 자아실현과 같은 가치를 모두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그 중 한 가지도 잡기 어려운 게 우리 인생의 묘미가 아니겠어.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대개 시키자마자 바로 먹는 따끈한 치킨과 잠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꺼낸 시원한 맥주, 어느 한가한 주말에 볼 만한 만화 전 권을 탐독하며 배를 깔고 엎드려 까먹는 귤, 남들 일할 때 연차를 내고 카페 테라스에 앉아 바삐 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즐기는 커피 한 잔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이렇게 별 것도 아니면서,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는 관념을 세 글자로 줄일 수 있는 단어, ‘소확행’.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무려 32년 전!)의 에세이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라는데, 역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에게는 남다른 것이 있나봐.

소비 키워드이기도 한 ‘소확행’의 장점은 포괄적인 개념인만큼 여기저기 ‘붙이기’가 좋다는 데 있어. 화장품에도, 아이돌 굿즈에도, 신간 도서에도, 여행 상품에도, 공연 예술에도…비용이 크지 않은 어떤 상품과 서비스에도 붙일 수 있지.

실제로도 최근엔 너무 많은 상품에 ‘소확행’이란 키워드가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소확행’ 상품은 ‘얼마나 대중적으로 널리’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 같아.


◇패스트힐링(Fast healing) - 문제는 ‘힐링’이 아니라, ‘힐링할 시간’이야! 멍청아!

“힘들면 ○○○라도 하면서 힐링해!”

말은 참 쉽다.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대한민국 직장인 열에 아홉은 본인에게 힐링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거야.

“힐링해~”라는 조언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그 ‘힐링할 시간’이 부족해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거야. 15박 16일 유럽여행을 다녀온다거나, 제주도 푸른 바다를 보며 인피니티풀을 즐길 수 있다면 충분한 힐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등장한 게 ‘패스트힐링’. 이제 힐링을 위해 무리한 연차 붙여쓰기로 직장생활을 건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아도, 점심시간에 잠깐의 짬을 내 소소한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상품들이 생겨났다는 것.

패스트힐링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수면카페야. 1만 원 안팎의 요금을 지불하면 1시간 가량, 말 그대로 ‘잠을 잘’ 공간을 대여해주는 서비스지. 이미 여의도, 강남 등 오피스 지구엔 수면 전용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어. CGV같은 영화관에서 아예 점심시간의 특정 관을 수면용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기까지 하지.

현재까지 패스트힐링 양대 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상품으로는 안마카페를 들 수 있어. 데이트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는 안마카페는 안마의자에 앉아 간단한 차 한잔과 함께 안마를 즐기는 서비스야. 안마사가 안마하는 마사지숍에 비해 소요 시간이 짧고,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패스트힐링의 태동기였던 올해는 수면카페와 안마카페 정도만이 개척됐지만, 다가올 내년에는 또 어떤 유형의 ‘직장인 급속충전형 서비스’가 대세가 될지. 궁금하지 않아? 벌써부터 스타트업들의 탐색전이 분주하더라고.


◇미닝아웃(Meaning out) - 내가 가진 신념, 참 좋은데…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평범한 직장인 A씨. 그는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아프리카 개도국 아이들을 생각하며 공정무역 커피만 골라서 마셨고, 그 커피를 종이나 플라스틱 컵에 마셨을 때 오염되는 환경이 안타까워 항상 텀블러를 챙겨 다닌다. 유니세프에 대한 후원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공장식 축산에 고통받는 동물들이 불쌍해 얼마 전부터는 채식을 택하기도 했다.

채식을 하기 때문에 오늘 저녁 삼겹살 회식에 불참하겠다는 A 씨의 말에 ‘더 평범한 직장인’인 B 부장이 한 마디 했다.

“A 씨 같이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밖에 몰라…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말야.”

분노가 차오르는 A 씨. 하지만 “부장님! 제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가는지 아세요?! 제가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의미로 채식부터 시작해서…”라고 맞받아치기가 참 곤란하다. 일단 시작하면 말도 길어질 뿐더러, ‘내가 이렇게 신념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게 어딘가 좀 구차해 보인다. 그렇다고 회식 한 번 빠졌다고 ‘이기주의자’로 찍히는 것도 부당하고…

A 씨 같은 이들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트렌드가 ‘미닝아웃’이야. ‘미닝아웃’은 ‘뜻(meaning)’을 ‘표출하다(out)’라는 뜻이지. A씨가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팔에 찬 세련된 유니세프 팔찌가 그의 뜻 깊은 후원을 다른 이가 알 수 있게 해주고, 그가 입고 찍은 ‘낫 아워스’ 티셔츠가 채식을 택한 그의 신념을 대변해주는 것이랄까. 이처럼 해당 소비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사용자의 신념을 타인에게 은근하게 드러내 주는 소비 트렌드가 ‘미닝아웃’이야.

‘미닝아웃’을 공명심이나 허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해. 모르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캠페인을, 지인이 사용하는 소비재를 보며 알게 되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지. 공정하며, 환경오염을 막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는데 기여하는 소비 트렌드라고 보는 게 합당해 보여.


◇TMI(Too Much Information) - 몰라도 되는 건 모르면 안될까?

"00야, 문재인 대통령 피부색이 무슨 톤인 줄 알아?"

"내 피부 톤도 모르는데?"

'안물안궁'이겠지만, 문 대통령의 피부 톤은 '여름 쿨톤'이야. 여름 쿨톤은 부드러운 이미지가 잘 어울리며, 잘 어울리는 색은 '블루 계열'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일까? 문 대통령의 시그니처 컬러는 파란색이지.

"그건 정말이지. 쓸데없이 디테일해".

정말 쓸데없지만,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 공자님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가르침을 남겼지만, 우리는 지금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어. 너 'TMI' 알지?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그래서 TMI 뜻이 뭔데?"

'TMI'는 정보 과잉에 대한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신조어로, '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야. 처음에는 정보 과잉 현상을 대표하는 부정적인 신조어로 등장했다가, 점점 일상적인 신조어로 긍정적 의미를 갖게 됐지. 20대 청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에 꼽히기도 했고, JMT(존맛탱)이나 핵인싸처럼 'TMI' 모르면 아싸되는거지.

SNS을 중심으로 젊은 층에게 주로 쓰이던 이 단어가 정치, 사회, 일상, 연예 등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며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게 됐어.

"예를 들면?"

"알아두면 쓸데없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지."

"김무성 의원 별자리는 처녀자리고, 트럼프 생일은 키스데이야(6월 14일)"

"문 대통령 주량은 소주 1병, 김 위원장 주량은 와인 10병이야. 트럼프는 하루에 다이어트 콜라를 12캔 마신대"

"강호동은 옷 사이즈가 5XL고"

"태진아 본명은 조방헌이고, 큰아버지는 조똘복이래"

"너구리 속 다시마의 원산지는 완도이고"

"도쿄돔 쓰레기통 개수는 270개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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