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위미노믹스] 性불평등 눈감은 사회, 성장둔화 ‘불편한 진실’

입력 2019-0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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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임금차별·가사·육아 부담 ‘역풍’…20년간 글로벌 생산인구 감소세 뚜렷

1999년 등장한 위미노믹스(Womenomics)가 20년 만에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경기를 부양하려는 각국 정부가 위미노믹스를 통해 달라진 여성 소비자의 위상을 치하하거나 ‘유리천장’을 깬 극소수의 여성 고위직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진짜로 ‘여성의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난해 미투 운동을 촉발한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최근 들어 ‘타임스 업(Time’s up·시간이 됐다)‘을 외치고 있다. 남성 독점 시대를 끝내고 경제·사회 영역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는 비단 여성만의 절박함이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미래 생산동력을 잃은 국가들은 더 물러설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미노믹스로 회귀하고 있다. 저성장, 규제 강화, 미국 영향력 감소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경제 흐름을 일컫는 이른바 ‘뉴 노멀’에 위미노믹스가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저출산·고령화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위미노믹스 ‘절실’ = 지난해 6월 세계은행은 전 세계 141개국을 조사한 ‘성불평등의 비용(The cost of gender inequality)’ 보고서를 내고 여성 차별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전 세계적으로 160조2000억 달러(1경8385조 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경제 참여가 확대되고 성평등한 문화가 조성될 경우 개인당 2만3620달러의 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의 쿠엔틴 워든 이코노미스트는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고, 동일한 시간만큼 일한다면 전 세계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계산했다”며 “성 불평등으로 각 국가는 평균적으로 부의 14%를 잃고 있었다”고 말했다.

위미노믹스는 골드만삭스의 캐시 마쓰이가 여성(woman)과 경제(economics)를 합쳐 만든 단어다. 그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의 해법이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에 있다고 믿었다. 이번 보고서를 비롯해 세계은행은 2001년부터 ‘젠더 메인스트리밍 전략’ 보고서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여성을 노동시장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와 구호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여성들은 인생의 과업에서 출산을 지워버렸다. 세계의 생산(노동)가능인구 성장세는 지속적으로 둔화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본은 1996년, 중국은 2012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고 한국도 지난해 생산가능인구 그래프가 꺾였다. 경제 현장에 나선 여성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아이를 더 낳고 기를 만한 임금 수준이나 노동 시간, 가사·육아 분담 시스템은 자리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총인구는 76억3300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8300만 명(1.1%) 늘었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인구성장률도 1.2%에 불과하다. 여성 1명당 평균 2.5명을 출산했다. 특히 한국은 1.3명으로 포르투갈, 몰도바에 이어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국가다. 유엔인구기금은 이를 여성의 ‘재생산권(생식권)’이 사회·경제적인 불편으로 인해 보편적인 권리로서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위미노믹스 찾는 국가들 = 노동인구의 부재는 단순히 ‘벌 수 있는 돈(160조2000억 달러)을 못 번’ 아쉬운 상황을 넘어섰다. 일찍부터 인구문제로 고심해온 일본에서는 2013년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가 다시 위미노믹스를 주요 정책으로 꺼내 들었다. 2013년 당시 49%에 불과한 25~4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2020년엔 73%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기존 목표치였던 68%에서 5%포인트 더 상향한 것이지만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2017년 기준 85.6%)과 비교하면 여전히 10%포인트 이상 차이 나는 수준이다. 상장기업 임원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다소 급진적인 목표치로 보일 수 있지만, 점점 극심해지는 일본의 인구 감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여성을 일터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일본 후생성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15~64세)는 1995년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현재 1억 명이 넘는 일본 인구는 2060년엔 8700만 명까지 줄어든다. 그중 40%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다. 11월 29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의 경기 및 정책과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향후 40년간 25%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감소가 고민인 선진국뿐 아니라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토대로 성장 중인 개발도상국에서도 여성의 경제활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인도 인구는 13억5410만 명으로 중국(14억150만 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다. 중국은 60%가 넘는다. 미국과 유럽, 한국 등은 대부분 50% 초반 수준이다.

특히 유엔인구기금은 인도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을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한 국가’라고 진단한 상태다. 이들 개발도상국은 당장은 인구 문제로 압박감을 느끼지 않겠지만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 노동인구가 줄고 연금과 보건 서비스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나 아가르왈, 나타 두부리 등 인도의 여성주의 경제학자들은 힌두교 국가에서 더욱 억압된 여성의 권리와 경제활동 상황을 개선해야만 인도 경제가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힌두교 여성이 토지에 대한 권리조차 가지지 못해 빈곤 문제가 급증한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힌두교나 일부 이슬람 국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인도에서는 2005년에서야 여성이 재산을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아일랜드의 이코노미스트인 빅터 두간은 최근 더저널(The Journal)에 기고한 글에서 “여성 노동자가 적고 여성의 임금이 낮으며 여성 비즈니스 리더가 적은 상황은 여성에게 나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억제해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며 “이제 ‘뉴 노멀’에 위미노믹스가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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