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의 기운이 감돈다는 ‘기해년’이 밝았다.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띠’의 해이기도 하다. 이건기<사진> 해외건설협회장은 복이 많은 2019년을 맞이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건설업계가 해외수주 부진을 완전히 털어내진 못했지만, 건설사들의 의지와 정부 정책이 맞물리면서 해외사업에 청신호를 기대해도 된다는 것이다. 2018년 무술년을 보내기 며칠 전 이건기 협회장을 만났다.
이건기 협회장은 올해 해외수주 전망을 묻는 말에 “2018년과 유사한 수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321억 달러로 집계됐다. 협회 측은 수주 규모가 3년 만에 3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해외건설 수주 조정기가 견실한 성장기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 협회장은 특히 아시아 토목·건축과 중동 토목·산업설비 분야의 양호한 성장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해외건설 수주 특성상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여부에 따라 향후 수주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불확실한 세계 경제 상황, 글로벌 경제 심화 등 대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아 본격적인 수주증가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IHS Markit)에 따르면 올해 세계건설시장은 작년보다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며 약 11조600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협회장은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이 우리 해외건설의 주력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저유가로 발주물량이 줄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해 있는 중동시장은 당분간 수주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시장은 작년과 비슷한 150억 달러 내외, 중동은 100억 달러 내외로 각각 수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협회장은 아시아에서 특히 베트남 시장을 주목했다. 그는 “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1억 명에 가까운 인구, 급속한 도시화, 풍부한 인프라 개발수요 등으로 시장 환경이 좋아 연간 30억 달러 내외의 수주가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그 외 싱가포르는 20억~30억 달러 수주를 기대할 수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도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기대한다고 했다.
중동 지역에 대해서는 산유국 중심으로 수주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협회장은 “올해 50억 달러 이상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에서 토목 인프라와 석유화학 등 산업설비 프로젝트 수주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며 “연간 수주금액은 대규모 산업설비공사 수주 여부에 따라 차이를 보이겠지만 국가별로 20억~50억 달러를 수주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협회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건설사CEO 간담회를 했다. 해외건설협회는 ‘해외건설 수주플랫폼 회의’를 분기에 한 번씩 열고 있다. 해외건설 관련 현안을 공유하고 발전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건설사CEO, 정책금융기관 등이 참석한다.
이 협회장은 해외사업을 준비하는 건설사CEO들이 금융보증에서 난관에 부딪히는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이 협회장은 “건설사CEO들과 얘기를 나누면 금융보증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 듣는다”며 “현지 정보 수집, 입찰방법에 관한 노하우는 많이 쌓았지만 금융에 대한 애로사항은 여전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건설업계의 고민에 ‘단비’가 내렸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 수출 및 해외진출 지원 강화를 위해 총 6조 원의 ‘글로벌 플랜트·건설·스마트시티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정책을 보면 사업 위험도(중위험·고위험·초고위험)에 따라 펀드, 정책자금 등을 통한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나와 있다.
이 협회장도 기존 정부 지원책과 비교하면 환영할 만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실 자본력이 아직 미미하다”며 “펀드를 조성해서 지원하는 것은 해외사업에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기존에 글로벌인프라펀드(GIF)가 해외 사회기반시설 관련 투자개발사업에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규모는 3730억 원(정부 400억 원, 공공기관 1600억 원, 민간 1730억 원)으로 이번 금융지원 프로그램 조성액보다 턱없이 적었다.
이 협회장은 “기존에 해외인프라사업의 97%는 EPC(설계·조달·시공)사업이었고, 약 2~3%가 민관합작투자사업(PPP)이었다”며 “6조 원의 금융지원은 시의적절하며 바로 효과가 날지 모르겠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도 굉장히 환영할 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도 (건설사의 해외사업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좋은 결과가 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협회장은 건설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 투자, 가격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동 경제전문 주간지 MEED에 따르면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석유가스 부문 EPC계약 순위 업체에 톱20(2017년 10월~2018년 9월 기준)에 국내 업체는 단 3곳만 이름을 올렸다.
이 협회장은 “우리 건설기업들은 아직 후발주자가 넘보지 못하는 기본설계, 비용절감을 위한 공기단축 공법 등을 포함한 기술경쟁력 배양에 힘써야 한다”며 “자체 기술력 확보를 위한 R&D 및 인력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기업과 협력을 비롯해 인수·합병(M&A)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EPC 프로젝트에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선 가장 큰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조달 부문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양질의 가격 경쟁력이 있는 협력업체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협회장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건축·주택 전문가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협회를 이끌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30년 정도 했고, 인프라 등 공사에 대한 부분이 낯설지 않다”며 “해외 나라마다 다른 특성을 인지하고 건설업계가 어느 수준의 기술로, 어느 정도의 자본으로 나아가야 할지는 제 노하우를 바탕으로 파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임기 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중소·중견건설사의 해외 시장 진출 지원을 힘주어 말했다.
이 협회장은 “협회는 올해 정보지원 역량 강화와 우리 기업 간 협업을 통한 수주 확대, 대기업·중소·중견기업 동반진출 지원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 해외건설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중소·중견 건설사의 동반진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며 “현지 사업 관행 습득이나 협력업체와의 조율, 기자재조달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능력이 부족하므로 관련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