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올 들어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이는 고용 성과라는 몸통의 호조가 최저임금 꼬리를 움직인 것이다. 2012년 이후 한 해 200만 개가 넘는 신규 고용이 이루어지고 실업률은 20년래 최저이며 임금이 오르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 약 10년 만에 최저 수준의 신규 일자리 창출, 실업률 증가, 자영업 폐업 가속화와 같은 몸통의 부진은 지난 2년간 각각 16.4%와 10.9% 오른 최저임금 꼬리에 휘둘린 모습이다.
미국 최저임금에는 우리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각 주(州)마다 다르고 일부 대도시에서는 시(市)정부가 자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따로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은 5개 주는 연방정부가 정하는 기준을 따른다. 현행 연방 최저임금 시급은 7.25달러(약 8200원)로 2009년 이후 인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크게 올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주에서 정한 수준이 연방 최저임금보다 높은 주가 많지만 같거나 더 낮은 곳도 19개나 된다.
둘째, 주에서 정하는 최저임금 수준도 획일적이지 않으며 인상이 매년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에 비해 주기도 일정치 않다. 사업장 규모, 또는 직종에 대해 차등하여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는 올 들어 25인 이하 사업장은 10.50달러에서 11달러로, 26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11달러에서 12달러로 인상했다. 플로리다는 일반 최저임금을 8.25달러에서 8.46달러로 올렸고, 팁을 받는 업종의 경우 5.23달러에서 5.44달러로 인상했다.
작년 말 주휴수당 논란으로 알려지게 된 최저임금의 추가 비용이 없는 미국이니 현재의 최저임금은 그 절대 수준, 국민의 평균소득 대비 상대 수준, 인상폭 등 여러 면에서 한국에 비해 인색해 보인다. 평균소득이 상위권인 캘리포니아는 가장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보이는 곳이며 민주당의 텃밭이다. 굴지의 하이텍 기업과 고소득자가 많아 도시 지역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소득 격차에 대한 우려가 높은 곳이다.
그러니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경험을 미국에 수출하여 대미 서비스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망상(妄想)이다. 미국은 일자리가 넉넉히 만들어지면서 능력이나 처지에 따라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뿐더러 소위 ‘소주성’ 발상이 웃음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작년 내내 취약계층의 고용과 자영업자들의 사정을 어렵게 했던 최저임금 정책이 새해 벽두에도 다시 뉴스거리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하겠다 한다. 작은 부스럼을 큰 상처로 키워놓은 정부는 대처 방안을 급조하느라 허둥지둥 한 해를 보내더니 이제 마치 점정(點睛)인 양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를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들며 공치사를 동냥하는 형국이다.
새로운 기구 필요 없다. 또 최저임금을 매년 조정하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 생활비를 결정하는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면 고용 사정이 어려울 때 최저임금이 오를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번에 주휴수당, 총액기준 높은 연봉의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을 못 받는(?) 문제 등으로 드러난 어처구니없는 임금체계의 단순화가 더 시급한 과제이다.
정책을 추진했던 이들도 최저임금과 소득분배와의 관계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경제학은 가능한 한 단순한 설명(또는 해법)이 제일 바람직하다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원칙을 중요시한다. 애초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대신 고용사정 개선과 취약계층의 소득 보전에 초점을 맞춘 정책 조합을 찾아 시행했다면 소득분배 개선을 더 효과적으로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확실한 방향 재설정이 절실하다. 그간 정부의 무모한 실험이 소득격차 악화라는 범세계적이고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우리의 해법을 찾는 일을 더 어렵게 한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