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그 지독한 컬렉션 욕망을 좇은 사람들

입력 2019-01-15 05:00 수정 2019-01-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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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미술품 컬렉션 자료나 기록을 살피다 보면 상식을 비켜가는 다양한 일화를 만나게 된다. 명품을 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격정이 있고, 통제되지 않는 수집욕으로 파산하는 비극도 있다. 애지중지하는 작품을 혼자만의 것으로 독점하려는 소유 욕망 때문에 불태워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무덤에 부장케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몇 년 전, 중국과 대만에서 분리된 채로 소장되어 오다가 350여 년 만에 한 몸으로 전시되어 화제가 되었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는 한 컬렉터의 극단적인 소유 욕망이 빚어낸 희생물이었다. 이 그림은 원나라의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이 그린 중국의 10대 명화로 꼽히는 작품. 그의 나이 72살 때 무용사(無用師) 스님을 위해 그리기 시작해 4년 만에 완성한 것으로, 절강성(浙江省)의 부춘강과 부춘산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수묵산수화다.

명나라 말,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오홍유(吳洪裕)는 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임종하면서 그림을 태워 그 재를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한다. 유언에 따라 그림은 결국 불에 던져지는데, 그 순간 이를 안타까이 여긴 조카가 작품을 구해내지만, 이때 일부가 불에 타고 훼손되면서 두 부분으로 분리된다. ‘잉산도권(剩山圖卷)’으로 불리는 길이 51.4㎝의 앞부분은 항주의 절강성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무용사권(無用師卷)’으로 불리는 639.9㎝ 길이의 뒷부분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해 타이완으로 쫓겨가면서 가져가 지금은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애장품에 대한 극단적인 탐닉과 집착은 사후 무덤에 그것을 부장하도록 함으로써 소유권(?)을 영원히 이어가고자 한 경우도 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동진(東晉)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07∼365)가 쓴 불후의 명작 ‘난정서(蘭亭敍)’를 죽어서까지 함께하기 위하여 부장케 하였고, 조선후기의 서화 컬렉터 김광수(金光遂 1699∼1770)도 명나라의 유명화가 구영(仇英)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부장하려 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컬렉터 자신이 직설적으로 내면의 심리를 비장하게 드러낸 경우도 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사람과 사랑에 빠져본 적도 없고, 그림보다 더 사랑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가져간 그림을 다 돌려주고 내가 죽은 뒤에 맘대로 해라!” 2013년 11월, 독일의 은둔 컬렉터 구를리트(C. Gurlitt, 1933∼2014)가 나치의 약탈 미술품을 은닉했다는 혐의로 자신의 소장품을 압수당한 후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압수 당시 그는 자신의 분신처럼 애장해 왔던 작품들이 포장되어 반출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앞으로 미술품 없이 살아갈 일이 너무나 끔찍하고 두렵다”며 절망했다고 전한다.

그렇다고 어찌 이들만이 컬렉션 욕망을 좇았다고 할 것인가? 우리 주변에도 컬렉션 욕망에 대한 감내할 수 없는 갈증을 고백하는 이들이 많다. 그 욕망은 마치 운명 같아서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갈증을 해소하고픈 유혹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사연으로 컬렉션의 세계에서는 밖으로 드러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면에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거부할 수 없는 컬렉션 욕망을 바라보는 우리는 몸서리치지만, 컬렉션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긍정한다.

그 욕망의 지독함 때문일까, 컬렉션 심리에는 다양한 정의와 비유,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당연히 그 행태를 규정함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잣대의 적용이나 논리적인 해석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세상의 온갖 욕망이 뒤엉키고 넘쳐나는 미술시장을 향해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때로는 타산적으로, 때로는 본능적으로 분출하는 것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관점에서 컬렉션은 분명 세속적이면서 초월적이다. 깊이와 탁도(濁度)를 알 수 없는 진흙탕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피워 올리는 연꽃이라고 할까.

그렇듯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과 욕망이 집념이 되고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이들이 있어 인류의 미술문화는 보존 전승되어 왔다. 미술 애호와 컬렉션이 개인의 자족과 즐거움을 넘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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