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내가 더 이상 아이폰을 사지 않는 이유

입력 2019-0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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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장

오랫동안 애플의 스마트폰을 써왔다. 애플이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주욱. 아이폰을 통해 무료 통화를 하고, 무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이뿐인가. 인터넷에 접속해 검색을 하고, 날씨를 확인하고, 뉴스를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외에 있는 지인들의 소식을 접한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이런 충성스러운 고객도 없지 싶다.

하지만 내 아이폰은 최신 모델이 아니다. 2017년에 아이폰 10주년 모델 ‘아이폰X’과 2018년에 ‘아이폰XS’가 나오도록 그 전전 모델인 ‘아이폰7플러스’를 쓰고 있다. 아이폰X에 도입된 페이스ID를 사용해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할 수 없고, 아이폰XS처럼 OLED 디스플레이가 장착되지 않아 화면이 아주 선명하지 않아도 사용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128GB라는 공간은 저장된 사진이 1만 장이 넘어도 남아 돈다. 튼튼한 케이스 덕에 표면에도 흠집 하나 없다.

애플이 아무리 떠들썩하게 신형 아이폰 출시 이벤트를 해도 꿈쩍하지 않는 이유다. 아이폰 교체 주기가 평균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났다는 조사 결과(베이스트리트 리서치)가 결코 틀리지 않음이다.

모든 충성 고객들은 자신이 애용하는 제품이 업그레이드되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호구’라고 불려도 상관없다. 단, 그 전제 조건은 ‘혁신’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출시된 아이폰에는 그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 가격만 대폭 올렸다. 그런데도 애플은 “중국 경제 탓이다”, “각 나라에서 휴대전화 구매 시 보조금 지급을 막는다” 등 해명에만 급급하다.

애플의 실망스러운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9’에서 애플은 바닥을 보여줬다. 이번 CES에서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5G 시대에 대비한 신제품을 선보이느라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정식으로 참가도 하지 않은 애플은 치졸한 방법으로 행사 참가자들의 이목을 ‘훔쳤다’.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일은 라스베이거스에 머문다)”라는 유명한 속담을 차용해 “What happens on your iPhone, stays on your iPhone(당신의 아이폰에서 일어난 일은 아이폰에 머문다)”이라는 뜬금없는 대형 옥외 광고로 구글을 도발한 것. 이는 구글의 OS ‘안드로이드’가 해커들에게 사용자 정보를 흘리고 있음을 비꼰 것이다. 하필 대규모 해킹으로 525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메리어트 호텔 벽에다가 말이다. 굳이 구글의 광고로 도배된 차량이 달리는 모노레일 옆에 이런 광고를 내걸고 직원들을 보냈다는 건 경쟁업체들을 염탐하기 위해서였다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

혁신의 아이콘, 시가 총액 세계 1위 기업으로서 애플의 자존심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이폰을 필두로 아이패드, 맥컴퓨터, 맥북, 아이팟, 애플워치, 홈팟, 애플뮤직, 애플TV 등 자체 생태계 확장에 급급해 정작 ‘대인’으로서의 품위를 잃은 건 아닌지.

얼마 전 애플이 2019 회계 1분기 실적 전망을 하향하면서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공급망)들이 충격에 휩싸이는 장면을 세계가 목도했다. 이제 애플은 자체 생태계를 뛰어넘어 ‘애플 경제권’이라는 더 큰 책임의 무게를 가진 존재가 됐다는 의미다.

“굳이 여러 가지를 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스티브 발머 전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의 일침을 새겨야 한다. 전 세계를 ‘윈도’ 생태계로 묶으려다 실패한 노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아이폰에만 의존하는 것도 무리수이지만 그렇다고 부진한 사업까지 다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객들이 바라는 것도 많은 것이 아니다. 단 ‘한 방’이다. ‘딱’ 보고 ‘혹’ 할 수 있는 그 한 방. 거기에 애플 경제권에 묶인 수백만 명의 밥줄이 달렸다. 나 역시 그 ‘한 방’이 나오지 않는 이상 새 아이폰을 사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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