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 돼지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집집이 돼지를 길렀고, 돼지꿈은 길몽이라며 크게 반겼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돼지가 새끼들을 품에 안고 젖을 빨리는 사진을 걸어놓거나, 새해 첫 돼지 날(上亥日)에 문을 열어놓는 등 돼지를 부와 복의 상징으로 여겼다. 돼지해를 맞아 행운과 재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해 '돼지 투어'를 추천한다.
'로또 당첨'이라는 말은 어느덧 행운에 닿길 바라는 마음이 깃든 고유어가 됐다. 뭐니뭐니해도 돼지 하면 복(福) 돼지다. 2019년은 '부'와 '행운'이 가득한 한 해가 바란다면, 황금 돼지의 기운이 가득한 체험지를 찾아 떠나보자. 두 번째 '돈(豚·돼지)투어' 주제는 '숨어 있는 황금 돼지를 찾아라'이다. 누가 아는가. 황금 돼지를 찾고 진짜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
◇ '금빛 돼지상' 안 보면 불국사 갔다고 할 수 없지 = 경북 경주시 불국로에 위치한 불국사.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것이다.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면 다보탑과 석가탑,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부처님 나라가 펼쳐진다.
청운교와 백운교 옆 연화교와 칠보교에 오르면 대웅전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락전이 자리 잡았다. 극락전 앞에는 탑이 아니라 금빛 돼지상이 있다. 그 아래 '극락전 복돼지상'이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천년 고찰에 복돼지상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만들어진 데는 사연이 있다.
지난 2007년 초 극락전 현판 뒤에서 자그마한 돼지 조각이 우연히 발견됐다. 불국사가 처음 문을 연 통일신라 시대부터 천 년이 넘고,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극락전이 다시 지어진 1750년부터 따져도 250년 넘게 숨어 있던 돼지 조각이 발견된 일은 화제를 모았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찾아와 복을 빌자, 불국사에서는 '극락전 복돼지'라는 공식 이름을 만들고, 기념 100일 법회를 성대하게 열었다. 현판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 복돼지를 누구나 쉽게 보고 만질 수 있도록 극락전 앞에 자그마한 복돼지상까지 만들었다.
◇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줄 서서 소원 비는 이들 =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불국사에는 극락전 복돼지를 보기 위한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외국인 단체 관광객은 반드시 들러 사진을 찍는 코스가 됐다. 극락전 앞에는 깃발을 든 가이드의 설명에 가볍게 탄성을 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복돼지상을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난다.
복돼지상을 만지며 복을 비는 내국인도 줄을 잇는다. 2017년 로또 당첨자가 "불국사 극락전 앞 복돼지를 쓰다듬고 현판 뒤에 있는 진짜 복돼지에게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 다음 극락전으로 들어가 108배를 올리고 로또에 당첨됐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복돼지상에서 기념 촬영을 한 사람은 극락전 현판 뒤에 숨은 돼지 조각을 찾아보기도 한다. 현판 뒤 기둥을 받치는 공포(栱包) 위에 있는 돼지 조각은 뾰족한 엄니가 드러나 멧돼지처럼 보이는데, 자그마해 사뭇 귀엽다. 보통 사찰의 공포 위에는 조각이 없거나, 있더라도 용이나 봉황 등을 새기기 때문에 돼지가 발견된 것은 희귀한 일이다.
◇ 복돼지 만지고 돼지 조각 봤다면, '끝판왕'은 아미타불 = 복돼지가 발견된 극락전은 서방의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신 곳이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아미타불의 서원 중에는 '모든 것에 만족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있단다.
극락전 복돼지 안내문에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극락정토의 복돼지는 부와 귀의 상징인 동시에, 지혜로 그 부귀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만족한 삶은 풍요로운 의식주와 더불어 욕심의 끝을 알아 스스로 절제하라는 경계의 뜻도 있다.
복돼지상을 만지고 현판 뒤의 돼지 조각까지 봤다면 극락전에 들어가 아미타불도 뵙고 가시길. 아미타불 앞에서 두 손 모으고 복을 빌며 스스로 모든 것에 만족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가르침을 새겨도 좋을 듯하다.
극락전에 모셔진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은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꼽힌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고 세련된 통일신라 불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삼존불의 좀 더 남성스러운 모습과 비교해도 재미있다.
◇ 이름부터 '돼지 섬' 돝섬…그곳엔 '황금 돼지' 전설이 있어 = 경남 창원에 가면 돼지와 관련된 여행지 두 곳이 있다. 돝섬과 저도가 그곳이다. 돝섬은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으로, 황금 돼지 전설이 있다. 스카이워크로 인기를 끄는 저도는 바다를 끼고 걷기 좋다.
창원시는 옛 마산과 진해, 창원이 합쳐진 대도시다. 마산합포구 앞바다에 돝섬이 두둥실 떠 있다. '돝'은 돼지의 옛말로, 돝섬은 말 그대로 돼지 섬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바람을 맞다 보면, 10분 만에 돝섬에 도착한다.
입구에 '복을 드리는 황금 돼지섬 돝섬'이라는 환영 문구가 여행자를 맞는다. 섬에 들어서면 황금 돼지상이 눈길을 끈다. 배에서 내린 여행자는 황금 돼지를 어루만지며 사진 찍기 바쁘다.
돝섬에는 전설이 있다. 가락국 왕의 총애를 받던 후궁 미희 이야기다. 미희가 어느 날 작은 섬으로 숨어들었다. 신하들이 환궁을 요청하자 미희는 황금 돼지로 변해 무학산으로 사라졌는데, 이후 황금 돼지가 백성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떠돈 것. 병사들이 금빛 돼지에 활을 쏘자, 한 줄기 빛이 내려와 섬이 돼지가 누운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신라 때는 돝섬에서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가 나, 최치원이 섬을 향해 활을 쏘니 잦아들었다는 전설도 있다. 입구에 있는 황금 돼지상 뒤에 전설을 표현한 벽화가 보인다.
◇ 지역 주민의 안락처 된 돝섬 = 돝섬은 1982년 해상유원지로 탄생했다. 한때는 섬에 서커스장과 동물원, 놀이기구가 있었고, 섬에 들어가는 배를 타려고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대가 흐르면서 돝섬은 잊혀졌고, 잠시 문을 닫기도 했다. 민간 업체가 운영하다가 지금은 창원시에서 인수해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섬 입구에서 왼쪽으로 향하면 출렁다리가 나온다. 섬은 천천히 산책하기 좋다. 푸른 바다에 눈을 던지고 걷다 보면 월영대와 관련된 시비와 조각 작품이 하나둘 나타난다. 2012년 창원조각비엔날레 때 설치된 것으로, 생명의 근원을 씨앗 모양으로 표현한 '생명―영(影)'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섬을 빛낸다.
돝섬과 함께 돼지해에 가볼 만한 섬, 저도. 돼지 저(豬) 자를 쓰는 저도 역시 돼지 섬으로, 하늘에서 보면 돼지가 누운 형상이라 붙은 이름이다.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자리한 저도로 가는 길은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다. 길이 좁아 더 운치 있다. 꼬불꼬불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가 눈에 들어온다. 저도는 돝섬과 달리 다리로 육지와 이어져 접근하기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