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에린의 벤처칼럼] 벤처가 더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

입력 2019-0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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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 경영학과 교수

도덕적 해이 또는 모럴 해저드는 원래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의 행동을 관찰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마땅한 위험관리 없이 고객의 위탁금을 함부로 운용하는 것을 지칭한다. 조금 더 넓게 해석하여 벤처 관점에서 본다면,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기업이 재무적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는 상황, 기업 운영을 위해 받은 자금의 손실을 정부(또는 누군가가)가 보전해 줄 것이라는 생각, 또는 다른 이유의 지나친 자신감으로 느슨한 윤리와 적절한 위험 관리를 하지 않고 벤처 운영과 자금 배분을 결정하는 것이 포함된다.

정부가 벤처를 청년 취업 문제의 돌파구로 정의한 후, 매년 예산에서 벤처 또는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규모를 점점 늘려왔다. 창업 성장 자금은 물론 창업 보육기관(액셀러레이터) 지원에도 큰 액수를 배정하고 있으며, 연기금도 벤처 투자 금액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젠 사업 지원금을 받은 후 성과를 못 내고 벤처가 실패하여도 ‘성실하게 사업을 수행하면’ 지원된 사업비가 전액 면제되는 상황이다. 접근 가능한 펀딩의 종류와 규모가 늘어남으로써, 실패 부담에 숨통이 트여 벤처를 하고자 하는 동기와 시도가 커지고, 실패한다 해도 채무자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고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성실하게 사업을 수행한다’는 정의는 모럴 해저드의 근본적인 문제인 벤처의 숨겨진 행위(hidden action)에 의한 정부기관의 정보 비대칭 상황을 피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하다. 펀딩과 연구비만 받고 성과는 내놓지 않는 종이 기업들을 솎아내고 통제하기에는 너무 관대한 기준이라 하겠다. 더 적절한 기준은 ‘벤처의 윤리에 어긋난 사업 수행’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벤처 열기와 함께 적지 않은 유동자금이 스타트업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인터넷 붐과 이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신기술, 또는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 별 마땅한 수익이나 장기 지속적 수익모델 없이도 엔젤투자자나 창업 자금을 유치하여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고 거대한 투자금을 확보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벤처가 그린 기대수익만으로 주가 지속이나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배운 시장은 펀딩의 엔진을 급속히 식혔고, 많은 벤처들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며 도산으로 치달았다. 2000년 초 경제 상황을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필자의 의견으로는 사업에 충실하여 수익을 내려는 노력보다는 눈먼 유동자금을 끌어들이기에 급급하고, 부당하고 부적절한 금전 지출과 지급 행위, 분식 회계와 기타 불법적 재무관리 등 숨겨진 행위로 야기된 경우가 많았다.

2000년 인터넷 버블이 꺼진 후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도덕적 해이로 유발되는 벤처 생태계의 위험 관리가 그리 많이 진화되었다고 보이진 않는다. 특히 기업의 최대주주로 있는 창업자가 투자 자금 운용과 관리에 있어 비도덕적 행위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상당하다. 즉 회사의 적자 상황과 극복의 어려움이 시장과 외부 환경에 있는 게 아니라 약속한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정당한 대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몇몇 주주와의 결탁 관계로 결국 신뢰를 잃고, 이에 따른 투자 자금 회수나 주식 매각 등으로 기업 가치를 떨어뜨려 전 주주에게 손해를 입히는 데 있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강조했듯이 벤처는 더욱더 윤리적·도덕적으로 움직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창업자는 자신이 일구고 있는 벤처가 내 것이라는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창업자와 그 경영팀은, 자신들의 벤처를 믿고 자금을 맡긴 사람들과 기관의 대리인으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건전한 기업 윤리와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 책임 있는 자금 운용으로 신뢰를 키워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일구어 놓은 벤처 생태계와 시장에서, 그리고 소비자로부터 냉소와 버림을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만, 겨우 작은 가지를 치며 조금씩 뿌리를 내려가는 벤처의 경우에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에서 오는 벌에 그 생사가 가름되기가 더욱 쉽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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