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균형’은 ‘안정’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구체적 지향점에 따라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안정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과거를 자본과 노동 간의 엄격한 상하 관계가 지배했던 기간으로 보는 시각이다. 따라서 노동자 계층의 소득을 늘려주는 정책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위상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우리 경제의 궤적에 대한 흥미로운 담론적 시각이 있다.니어(NEAR)재단이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는 과거 산업화 시대 경제가 정치에 우선했으나 1990년대 이후 정치가 경제보다 우선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변화는 경제 생태계에 큰 충격으로 작용했고, 아직까지도 정부·기업·노조 등 경제 주체들이 새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 여파로 경제가 활력을 잃으며 향후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현 정부의 ‘계층 간 관계 바로잡기’는 정치가 경제에 우선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새해 들어 청와대가 기업인들을 초청하여 대화를 하는 등 ‘경제 살리기’ 행보를 보이면서도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우회전 깜빡이, 좌회전 운행’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제보다 정치가 상위’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노동과 자본 몫의 불균형을 시정한다는 의지가 견고해 보인다. 우리 경제의 이런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결의를 읽을 수 있다.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정책기조를 바꾸라는 주문은 자본(또는 기업)의 개혁을 무산시키려는 노력으로 비쳐지고 있을지 모른다. 과거 진보 정부들이 ‘실패’했다고 보는 신념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비쳐질 것이다. 그래서 관료들의 ‘경제 살리기’ 립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려운 우리 경제 상황이 가시적으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수출 부진을 보자. 주요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리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 우리의 수출이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내 주요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해외 경제 부진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그리고 얼마나 갈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고조되고 있는 중국과 주요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향후 우리 경제의 활동성 회복에 중요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역설적으로 한국 주요 기업들이 국내 제조업 고용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드는 일에는 비싼 전문 인력, 기술력, 장비의 기여가 더 커지고 단순 생산과정의 비중은 줄게 된다. 더욱이 최종 생산(조립)은 아무 데서나 가능하다. 미국 기업인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중국에서 조립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인건비 부담이 유일한 요인은 아닐지 모르나 기업이 국내나 해외 중 어디에서 공정을 할지를 정할 때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는 변수이다. ‘소주성’은 이런 인건비를 올린다는 것이다. 수요가 늘지 않는 가운데 인위적 인건비 증가는 영세 사업장의 폐업은 물론 중견기업, 대기업이 국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설령 현 정책 주창자들의 바람대로 내수를 살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소위 제조업 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이나 수출 경쟁력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나라 안팎의 경제활동 여건이 단기간에 좋아질 것 같지 않아서 무기력한 경제 추세가 지속될 개연성이 크다. ‘정치와 경제’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 분야에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을 강조하는 균형성장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장의 외형 못지않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수출과 내수의 상호 선순환 구조를 키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부문 간 균형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 일자리 총량뿐 아니라 정규, 비정규로 2분화된 고용의 문제도 풀기가 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