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에 휘둘리는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입력 2019-01-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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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방침을 공식 천명했다.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공정경제 추진 전략회의’를 통해서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해 7월 도입됐다. 국민연금이 투자기업 경영의 주요 의사결정과 임원 선임·해임 등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문제를 일으켜 기업 가치를 훼손하거나 지배구조에 문제 있는 곳, 주주 권익 침해 우려가 있는 투자기업에 주주권을 행사하는 ‘수탁자책임 활동 가이드라인’도 최근 내놓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계속 논란을 빚고 있는 사안이다. 연금 투자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입맛대로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연금사회주의’로 흐를 가능성 때문이다. 연금이 기업 인사와 주요 사업 및 투자에 간섭할 경우 경영 자율성과 경쟁력이 훼손될 위험이 높다. 재계가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까지 나서 ‘공정경제’의 잣대로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 행사를 강조했다. 기업 경영권에 대한 강한 압박으로 부작용이 걱정스럽다. 현재 국민연금은 110조 원가량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보유지분이 5% 이상인 기업만 297개로 상장사의 15%에 이른다. 여기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네이버,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망라돼 있다. 포스코와 KT의 경우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다.

23일에는 ‘오너 갑질’로 물의를 빚은 한진그룹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논의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처음 열렸다. 위원들은 이사 해임과 사외이사 추천 등 경영참여는 배제하는 대신,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을 반대키로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주주권 행사 언급으로 결정된 방향이 뒤집어질 소지가 커졌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합리적으로 행사되려면 정부에 종속된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전문성과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정치 논리에 따른 주주권 행사로 민간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다면 국민의 노후 안전판인 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만 해칠 뿐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이사장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이고,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이다. 전혀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이 -1.5%로 원금까지 까먹었다. 2017년 수익률은 7.26%였다. 국민연금의 대원칙은 정부 정책 목표와 관계없이 오직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그걸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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