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을 전망한다는 것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전망을 하더라도 틀릴 때가 많겠다.”
1~2년 전 전·현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만큼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 금통위원들조차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백한 셈이다.
현시점 역시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예상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어렵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24일 금통위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내 1회 금리인상은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본다. 그 분수령은 새로운 경제전망 발표가 있는 7월이 될 것이다. 이는 미국 연준(Fed)의 금리인상과 가계부채, 그리고 늦어도 올 상반기 말 새로운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발표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 인하 없다는 간곡화법 “향후 방향은 인상” 트라우마 = 이 총재는 이달 금통위에서 연신 “금리인하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는 답을 쏟아냈다.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낮추면서 행여 불거질 수 있는 금리인하론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실제 이날 한은은 올 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각각 2.6%와 1.4%로 봤다. 이는 지난해 10월 직전 전망치(각각 2.7%, 1.7%) 대비 각각 0.1%포인트와 0.3%포인트 낮춘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미 채권시장은 금리인하 가능성을 일정 수준 반영하고 있는 중이다. 금통위 직전 날이었던 23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1.803%)와 기준금리(1.75%) 간 금리차는 5.3bp(1bp=0.01%포인트)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14일에는 3.1bp차까지 좁혀지며 금리인하기였던 2016년 10월 4일(2.6bp)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반면 통화정책방향(통방)은 여전히 금리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통방에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라는 문구를 그대로 유지한 데다, 이 총재 역시 “통화정책 기조는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총재는 “향후 방향은 여전히 인상 쪽을 시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금리인하를 논할 상황은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는 이 총재의 트라우마가 녹여진 간곡화법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2014년 4월 취임 초기 줄곧 금리인상을 언급했지만 그해 여름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후 금리인하로 180도 방향을 선회하면서 비판을 자초한 바 있다. 그 유명한 최 전 부총리의 “(금리인하는) 척하면 척”이란 언급도 그 당시 나온 말이다. 실제 이 총재는 취임 초기인 2014년 5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의 방향은 인상 쪽”이라고 못 박았었다.
◇ 금융불균형·연준 금리인상 보폭 주요 변수 = “실물경제가 감내할 수 있다면 금융 불균형의 확대는 막는 게 필요하다. 한두 달 사이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은 사실이나 금융안정리스크, 특히 가계부채라든가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이 총재는 향후 방향은 인상임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이처럼 향후 인상에 대한 조건을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실물경기와 글로벌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 경제에, 금융안정을 포함한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균형 있게 고려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에 따른 금융 불균형과 연준 금리인상 속도가 향후 한은 금리인상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가계부채 문제는 이미 우려할 수준에 와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100%에 근접해 분석대상 28개국 중 세 번째로 높고, GDP 대비 증가 속도도 최근 5년간 7%포인트 이상 늘어 호주와 캐나다와 함께 가장 큰 위험을 안고 있는 나라로 평가했다.
실제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4조9000억 원 증가했다. 2016년 11월(6조1000억 원 증가)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한은도 지난해 3분기(7~9월) 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85.9%로 추정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한은 금리인상은 그해 12월 연준 금리인상을 앞두고 단행한 것이다. 연준이 연내 한 번 금리인상을 단행하더라도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폭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bp로 벌어진다. 두 번 인상은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총재도 2일 한은 출입기자들과의 신년다과회에서 “올해 통화정책은 연준의 금리인상 보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관건은 역시 대내외 경기다. 대내적으로는 성장률은 물론이거니와 경제심리까지 좋을 것이 없다. 기업과 개인을 포함한 대표 심리지수인 경제심리지수(ESI)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12월 현재 93.4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1.25%로 인하한 다음 달인 2016년 7월(93.1) 이후 2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대외적으로도 미중 무역 분쟁, 연준 통화정책,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등 글로벌 경기 흐름을 좌우할 불확실성이 쌓여 있다.
◇ 문턱 낮춰 넘는다. GDP갭 플러스 전환할 듯 = 연내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논거 중 하나는 국내총생산 격차(GDP갭)가 마이너스 영역이라는 점이다. 즉, GDP갭이 마이너스일 때 금리인상이 단행된 적은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1월 한은 자료에 따르면 GDP갭률은 작년 상반기와 하반기, 올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마이너스(-)0.045%와 -0.065%, -0.04%, -0.0065%로 추정되고 있다. 2017년 하반기 0.135%로 5년 반 만에 반짝 플러스로 전환한 후 내리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은은 이와 관련해 추정의 불확실성이 커 사실상 격차가 없는 수준에서 횡보 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한은은 올 성장률을 2.6%로 낮추고도 잠재성장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잠재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7%나 2.6%는 잠재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올 상반기 중 새롭게 잠재성장률을 추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 총재의 이 같은 언급을 감안하면 잠재성장률은 2.6%에서 2.7%로 낮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GDP갭이란 실제GDP와 국민경제의 포괄적 생산능력 또는 균형생산 수준인 잠재GDP와의 차이를 의미한다. 이 수치가 플러스라는 것은 실제GDP가 잠재GDP를 상회하는 것으로 수요 측면에서 물가 상승압력이 발생한다. 추정 방법도 시계열을 활용한 HP필터법, 노동과 자본 등을 이용한 생산함수모형, 수요 및 공급요인 등 구조적 모형을 활용한 다변수은닉인자모형 등 접근법이 있다. 한은은 이 중 생산함수 접근법에 시계열 접근법 등 추정치를 보조지표로 활용해 산출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잠재성장률을 낮춘다는 것은 GDP갭률 산식상 분모를 낮추는 것과 같다. 결국 GDP갭은 플러스로 돌아서게 된다.
실제 2017년 7월 한은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잠재성장률 수준을 2.8%에서 2.9%로 추정하면서 GDP갭률도 종전 -0.4%에서 -0.5% 수준에서 -0.5%에서 0% 내외로 축소될 것으로 봤었다. 잠재성장률이 종전 3.4%(2011년부터 2015년까지) 수준에서 대폭 낮춰지면서 GDP갭도 사실상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