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환의 Aim High] 노키아 없는 핀란드가 남긴 교훈

입력 2019-01-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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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장

북유럽 부자 나라 핀란드의 경제성장을 이끌던 노키아는 애플과 삼성전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핀란드 경제의 노키아 의존도 역시 대단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핀란드 경제성장의 4분의 1을 노키아가 책임졌다. 수출 비중은 20%에 달했고, 핀란드 정부가 한 해 거둬들이던 법인세의 23%를 노키아 혼자 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가져올 강력한 변화를 예견치 못한 노키아는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2014년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되고 만다. 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업체가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는 불과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몰아닥친 노키아의 추락으로 핀란드인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컸다. 2007년 노키아의 실적이 급전직하하자 전형적인 소규모 개방경제였던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5.3%에서 0.3%로 곤두박질쳤고 실업률은 8.2%까지 치솟았다. 경상수지도 2011년부터 마이너스 상태에 빠지게 된다. 2000년 28.1%에 달하던 전기전자 부문의 수출점유율이 2013년에는 8.4%로 주저앉았고, 90억 유로에 달하던 전화기 수출액은 6억 유로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노키아의 몰락으로 핀란드는 국가 전체가 수출 침체에 빠져들어 한때 재정위기를 겪는 그리스보다 못한 수준이 되고 만다.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가 한국 경제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장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갑자기 흔들리고 있어서다.

제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내려앉을 경우 생산 감소에서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는 연쇄 파장은 피하기 어렵다. 출범 초기 삼성을 몰아세우던 정부마저도 최근 상황이 심상치 않자 예의주시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30.4%의 호조세를 보이던 반도체 수출은 9월 26.9%, 10월 21.4%로 증가폭이 둔화된 데 이어 11월 10.6%까지 떨어지더니 12월에는 8.3% 감소로 돌아섰다. 반도체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27개월 만이다. 올해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달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2% 감소로 출발했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타격을 받자 산업 전반에 악영향이 번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반도체 생산은 전월 대비 5.2% 감소했다. 제조업 부진에 따라 전체 산업생산도 한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도체의 부진한 흐름은 설비투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11월 설비투자는 특수산업용기계 등 기계류(-6.1%) 등 반도체 관련 투자가 줄면서 전월에 비해 5.1% 감소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투자 부진에 시달리면서 성장률이 2%대로 저하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반도체 위기는 기업의 실적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38.5% 감소한 10조8000억 원에 머물렀다. 3개월 만에 분기 영업이익이 6조7700억 원이나 빠지면서 반도체발 ‘어닝 쇼크’가 찾아왔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부도 반도체 수출 둔화와 기업 실적 하락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경기 불확실성 요인으로 반도체를 지목했다. 기획재정부는 새해 첫 그린북(최근 경제동향)에서 “전반적으로 수출 소비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투자와 고용이 조정을 받는 가운데 미중 무역갈등, 반도체 업황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반도체가 망한다고 삼성이 망하거나 나아가 한국이 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도 우리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다른 대기업이 여럿 망했지만 국가적 위기가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정치권이 삼성을 괴롭히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그리 믿을 만한 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런 유언비어는 아마 삼성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싶다. w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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