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해외 전시회 재방송한다고 혁신이 될까

입력 2019-01-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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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뉴스랩부장

“아, 이거 어떻게 따라잡나.” 2000년대 초, 미국에서 개최된 ‘컴덱스(COMDEX)’ 현장에서 기자가 한 혼잣말이다.

당시 세계 최대의 IT 전시회였던 컴덱스의 메인부스는 마이크로소프트, IBM, 인텔, 소니, 파나소닉 등 미국, 일본 업체들의 무대였다. 가장 큰 전시 공간을 차지한 것은 물론, 전시 제품 수준 역시 다른 나라 업체들과 비교할 때 차원이 달랐다.

반면, 한국 업체들은 별도 마련된 외곽 전시관 한구석에 한산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삼성전자와 LG전자 정도는 어느 정도 관람객들이 들락거렸지만, 닷컴 붐을 타고 만들어진 벤처기업들의 부스는 속된 말로 파리만 날렸다. 그나마 독립부스를 꾸민 곳은 “내가 아랍의 왕족인데 우리나라 판매 독점권을 주겠다”면서 접근하는 사기꾼들이라도 있었지만, 코트라 지원을 받고 한국관에 입점한 군소업체들은 온종일 상품소개 전단이 10장도 채 안 나갔다.

3년여 뒤, 컴덱스가 파산하고 주류가 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는 좀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내 기업들이 메인부스를 서서히 점령하면서, 한국은 전 세계 IT 트렌드의 주역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글로벌 IT 전시회에서의 위상은 그 당시 기업과 국가에 매우 중요했다.

또한 당시 전시회에서는 한 해를 이끌 트렌드 제시는 물론, 미래를 겨냥한 의미 있는 발표들이 쏟아졌다. IT가 세상을 이끌었던 시절인 만큼, 발표 하나하나가 앞으로의 미래를 바꿀 핵폭탄급 파괴력이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 탓에 자칫 흐름을 놓쳤다가는 도태되는 형국이어서, 모든 기업과 사람들의 눈은 글로벌 IT 전시회를 주목했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IT 전시회의 중요성은 과거만 훨씬 못하다. 일단,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해외 전시회 기사를 팩스나 모뎀으로 송고하던 당시에는 현장에 가지 않고서는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이제 주요 기업들의 발표는 스트리밍을 통해 전 세계로 생생히 중계된다.

또한 시장을 확 바꿀 트렌드가 좀처럼 나오지 않으면서 전시 성향도 바뀌었다. 기술력 과시보다는 올해 팔 물건들을 전시하는 형태로 변했다. 과거 CES는 신기술 위주, 세빗(CeBIT)이나 IFA는 연말 시즌 영업을 위한 바이어 행사로 성격을 나눴지만, 이제는 모두 영업 위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그리고 전시한 제품은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매장에 깔린다.

이렇다 보니 IT 전시회 산업은 일부 주최사를 제외하고는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 심지어 90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한 글로벌 3대 IT 전시회인 세빗도 문을 닫았다. 지난해 11월 세빗의 주최사인 도이체메세는 ‘세빗 2019’를 취소했다. 2017년도 20만 명, 다시 2018년에 12만 명으로 관람객이 급락한 게 원인이다.

다시 정리해 본다. 글로벌 IT 전시회는 과거와 달리 △빅 트렌드가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실시간으로 행사 발표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어 현장의 중요성이 떨어졌고 △관람객보다는 영업을 위한 바이어 위주로 바뀌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기업 동원 논란 속에 ‘한국판 CES’를 표방한 행사가 29일부터 3일간 열린다고 한다. ‘한국 전자·IT산업 융합 전시회’라는 모호한 이름의 행사에서는 CES 2019 참가 기업들의 성과를 공유하고, 이를 국민이 체험하고, 혁신성장을 모색하는 기회를 만든다고 한다. 불과 열흘 전 정부로부터 행사를 통보받은 기업들은 부랴부랴 부스를 꾸미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앞서 거론한 대로 글로벌 IT 전시회의 약발도 다해 가는 통에 국내에서도 똑같은 전시를 하라는 것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세상의 흐름에서 빗나간다. 바이어가 오는 행사도 아니니 영업 효과를 거둘 수도 없다. 급조한 행사의 한계이겠지만, 참가 대기업은 단 4곳뿐. 규모도 대형마트 가전 판매장과 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충실한 전시도 아니었고,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즉흥적인 발상으로 행사를 여는 것은 보여주기식 관치행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에 효과도 기대하지 못한다면 안 하는 게 맞다. 정부 입장에서는 좋은 의도였겠지만, 현장에서 ‘아닌 것 같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땐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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