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브렉시트’라는 막장 드라마의 결말은?

입력 2019-01-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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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벼랑 끝 전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과정을 둘러싼 영국 집권 보수당 총리의 술책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모국으로 예측 가능한 정치를 운영해 왔던 영국이 브렉시트로 불확실성의 표본이 됐다.

집권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EU와 합의한 탈퇴조약은 지난 15일 의회 표결에서 230표 차이로(반대 432, 찬성 202) 부결됐다. 이어 21일 의회에 제출한 대책에서도 그는 EU와 재협상을 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EU는 영국이 요구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국경 통제 없음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 재협상은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럼에도 총리는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브렉시트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신속한 탈퇴를 요구해온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압박해 왔다. 반면에 EU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를 원하는 의원들에게는 조약 부결 시 EU에서 튕겨져 나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는 ‘노 딜 브렉시트’가 불가피하다며 세차게 몰아붙인다. 영국의 EU탈퇴법은 탈퇴 일자를 3월 29일로 규정했지만 노 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총리는 의회를 계속해서 벼랑 끝으로 밀쳐 왔다.

이런 위협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 근거가 신뢰할 만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유럽통합은 국가가 보유한 통상과 환경 등 각종 권한을 EU 기구로 이양하는 과정이다. 신약 승인은 유럽의학처(EMA)가 보유하고 있는데 영국은 이런 별도 기구가 없다. 마찬가지로 EU 28개 회원국 간에는 영공이 개방돼 있어 항공사들이 회원국 내 어느 도시로든 자유롭게 운항이 가능하다. 노 딜 브렉시트의 경우 당장 이런 게 불가능해진다. 의약품 비축이 채 한 달도 되지 않기에 영국 병원이 약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영국 항공사들이 EU 다른 회원국으로의 운항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노 딜 브렉시트가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게 과장이 아니다.

일단 영국 하원은 노 딜 브렉시트를 저지하자는 원칙에는 과반이 합의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탈퇴일을 연장하지 못하면 하원의원의 20% 남짓에 불과한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원하는 노 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영국 하원은 어제 장시간의 토론에서 안전장치 대체에 합의해 오면 탈퇴조약을 비준하겠다는 수정안에 합의했다. 앞으로 최소 몇 주간 재협상 불가 방침을 밝힌 EU와 다시 이를 요구하는 영국 간의 힘겨운 샅바싸움이 계속될 듯하다.

지금까지 EU는 브렉시트를 두고 전개돼 온 영국의 ‘내란’을 걱정스럽게 주시해 왔다. 영국이 스스로 원해서 택한 길인데 아직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이 만장일치로 탈퇴시한 연장에 합의해야 시한이 연기된다. 조기 총선이나 제2 국민투표 실시처럼 영국의 정치 상황이 크게 변한다면 EU도 탈퇴시한을 연장해줄 명분이 생긴다.

제1야당 노동당이 선호하는 조기 총선은 집권 보수당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EU에 잔류하자는 유권자들이 탈퇴를 원하는 사람보다 12%포인트 높게 나왔지만 제2 국민투표 실시는 최후의 선택이 될 듯하다. 조기 총선 카드가 소진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 계속된다면 노동당이 국민투표 재실시로 입장을 선회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국민투표 재실시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

국제정치경제에서 ‘3월 위기’가 종종 거론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휴전 종료일이 3월 1일이다. 그리고 브렉시트 탈퇴시한 연기도 3월 29일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중국의 패권도전을 미국이 계속해서 강력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여 G2 간의 무역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도 있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브렉시트 불확실성도 그렇다. 막장 드라마가 절정에 이른 듯하지만 아직까지 출구가 어둡다.

브렉시트나 노 딜 브렉시트 자체가 우리 경제에 미칠 직접적 영향은 정부 발표대로 제한적이다. 하지만 초불확실성에 따른 기업의 투자 축소나 연기 등 간접적 영향은 측정이 어렵지만 무시할 수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로 대외 경제환경에 매우 취약한 우리가 이런 초불확실성에 면밀하게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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