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대화방] 설 제사부터 차례상까지 남녀기자 썰전…제사 대신 해외여행 안돼?

입력 2019-01-31 11:24 수정 2019-01-3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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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피자를 올려도 될까라는 논란을 넘어 차례상을 차리는 대신 피자를 시켜 먹어도 될까라는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제사상에 피자를 올려도 될까라는 논란을 넘어 차례상을 차리는 대신 피자를 시켜 먹어도 될까라는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는 피자가 좋다고 하셨지."

배우 박준규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사 음식으로 피자를 준비한다고 밝혔다. 박준규의 부친은 영화배우이자 감독이었던 고(故) 박노식 선생이다. 부친이 생전 피자를 너무 좋아해, 제사상에 피자를 올려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는 것.

제사상에 피자를 올리는 일이 전혀 생경하지 않은 시대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제사상 피자 인증샷을 게재한 글이 제법 올라온다. 한 네티즌은 "우리 집 제사상"이란 제목으로 제사상에 치즈피자를 올린 사진을 공개했고, '조상'이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이 "후손아 토핑은 어디 갔냐"라는 댓글을 달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게시글이 화제가 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며느리들의 세대가 바뀌고, 그들이 누리는 문화도 달라졌다. 그 결과 2019년 가장 뜨거운 이슈는 차례상 존폐 여부다. 제사상에 피자를 올려도 되는 가의 문제에서 제사상을 꼭 차려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까지 설전은 확전되고 있다. 제사는 지내되 차례상은 차리지 말자는 입장, 제사도 없애고 친척들끼리 외식을 하자는 입장 등, 의견이 분분하다.

설을 앞두고, 부서에서 가장 가부장적 문화에 최적화된 한 선배와 제사 경험이 없는 후배가 제사와 차례상에 관한 동상이몽을 속 시원하게 얘기해봤다.

◇제사 대신 해외여행 어때?

▲최근에는 아예 제사가 없어져, 명절에 가족끼리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최근에는 아예 제사가 없어져, 명절에 가족끼리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이재영 기자(이하 이): 내가 자신 있게 얘기하지만 나는 엄청 개방적인 사람이야. 나 정말 열린 사람이라고. 너희 세대와 사고방식이 완전 똑같아.

나경연 기자(이하 나): 선배, 이 질문 하나면 다 알 수 있어요. 설 때 제사 지내는 대신 해외여행 가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괜찮아. 왜 안돼? 이번 설에 우리 집도 부모님이 일본 여행 가시거든. 그래서 제사를 설이 오기 전, 이번 주 주말에 지내기로 했어.

나: 아니 선배, 제사 대신에 여행을 간다는 것은 아예 제사를 안 지낸다는 거예요. 제사를 미리 지내고 여행을 가면, 그게 설 때 제사를 지내는 거랑 뭐가 달라요. 만약 부모님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제사를 못 지내고 여행을 가시면요?

이: 그럼 나 혼자라도 지내야지. 만약, 불가피한 사정으로 가족 모두가 설 연휴에 해외에 있다면 해외 현지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도리지.

나: 선배, 경악 그 자체! 왜 그렇게 제사라는 예식에 집착하시는 거예요?

이: 나는 제사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문화라고 생각해. 제사를 지내면서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이었다, 조상들이 어떤 분이었다 이런 얘기들을 후손들이 나누는 자리인 거지. 우리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나는 벽진 이씨인데, 우리 조상 중에는 고려 말 대장군이셨던 이총원 장군이 계시고....

나: 아, 선배 잠깐만요. 네 좋아요. 그런 얘기들을 나누는 것은 좋은데, 조상님들의 이야기는 정해져 있잖아요. 바뀌지 않아요, 조상님과 본관에 관련된 이야기는 몇 십 년, 몇 백 년 동안 똑같은데 나눌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5년 동안 했던 족보 역사 기행을 6년째에 또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제사 없으면 모이기 힘들다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차례상에 피자를 올린 인증샷을 게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차례상에 피자를 올린 인증샷을 게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이: 나도 할 말 있어. 네 말도 맞긴 한데, 제사의 중요한 역할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거야.

나: 들어볼게요. 제발 저를 설득해 주세요. 방금 1년에 제사를 4번 지내는 다애 씨(뉴스랩부 미술기자) 말을 듣고 와서 쉽게 설득은 안 될 것 같아요.

이: 생각을 해봐. 제사가 없다면 가족들이 모일까? 제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라도 가족들이 1년에 설, 추석 두 번은 모일 수 있는 거야.

나: 글쎄요. 꼭 제사를 지내야 모이나요? 예를 들면, 부모님 생신 때나 할머니·할아버지 생신 같은 즐거운 행사에 다들 모이잖아요. 반드시 제사를 해야만 가족들이 모일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수도 있어요.

이: 음... 그렇기도 한데 일반적인 가족들은 생신이라도 모이기가 쉽지 않아. 그리고 우리 부모님 생신이라고 친척들이 다 모이는 것은 또 아니잖아? 제사도 없이 명절에 모이는 집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지. 특히 요즘같이 다들 바쁜 시대에는. 방금 준형 선배(산업부 기자)도 그러셨잖아. 총각 때는 부모님 생신 때 용돈만 드리고, 잔소리 듣기 싫어서 집에 안 갔다고.

나: 그리고 뒤에 말도 덧붙이셨잖아요. 준형 선배가 딸을 낳으니까, 특별한 행사가 없더라도 선배 딸을 보려고 친척들이 모인다고. 우리 집도 조카가 한 명 태어나면 그 조카 보려고 온 친척들이 주말에 다 모이거든요. 노동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제사가 없어도, 친척들이 모일 수 있는 일은 충분히 많다고 봐요. 꼭 강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 아니 나도 강제하는 건 아니라니까? 그냥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뿌리를 찾고, 이 모든 과정이 우리 집의 문화라는 거야. 제사를 지내지 않는 다른 집들의 문화가 잘못됐다거나, 그들도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지적할 생각은 1도 없거든?

◇차례상 대신 명란아보카도 덮밥은?

▲‘극적인 대화방’ 토론이 끝난 뒤에도, 선배의 부연 설명은 계속됐다. (나경연 기자 contest@)
▲‘극적인 대화방’ 토론이 끝난 뒤에도, 선배의 부연 설명은 계속됐다. (나경연 기자 contest@)

나: 선배, 그러면 제사 지낼 때 차례상은 어떻게 하세요? 종류가 몇 가지나 되세요?

이: 우리 집 간소한 편이야. 일단 튀김 올리거든. 새우튀김, 오징어튀김, 쥐포튀김 정도. 그리고 종류별로 제철에 맞는 생선 좀 올리고. 한 세 종류? 돼지고기랑 문어도 준비해. 전도 종류별로 몇 가지 준비하고. 전은 딱 정해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맛있는 나물로 준비하는 편이야.

나: 선배, 혹시 선배네 제사 차례상 사진 좀 볼 수 있어요?

이: 사진? 당연히 없지. 그런 경건한 자리에서 어떻게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어.

나: 선배, 선배네 차례상은 절대 간소한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최근 기사 나온 것 보셨죠? 퇴계 이황 댁 제사상에는 기름에 튀긴 유밀과나 기름에 지진 전이 전혀 올라가지 않았데요. 옛날에는 기름이 엄청 비쌌기 때문이죠. 또 명재 윤증 선생은 제사상이 가로 99cm, 세로 68cm를 넘지 말라고 하셨데요. 특히 강조하신 말! “제사는 엄정하되 간.소.하.게 하라”

이: 아니 뭐 우리가 그렇게 화려한 건 아닌데... 그런데 우리가 정성스럽게 음식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 제사 끝나면 우리가 먹게 되니까 그러는 거야. 우리가 안 먹을 음식이라면 차례상 한 판을 돈 주고 사와도 되지. 정성 없게 차려도 되고. 하지만 우리 입에 들어갈 음식이니까 정성과 노력을 쏟는 거지.

나: 뭐 그런 의미라면 좋은 거지만, 그 노력과 정성을 여자들이 대부분 쏟으니까 문제죠. 우리 부원들만 봐도, 다 어머니들이 하시잖아요. 아버지 역할은 장 보고 오면 짐 들고 올라오는 것 정도라고 말하니까요. 차라리 가족끼리 먹을 음식이라 정성을 쏟아야 한다면, 가족이 다 같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외식을 하면 어때요? 명란 아보카도 덮밥, 햄 치즈 파니니, 강된장 비빔밥 이런 음식은 안돼요?

이: 아니, 뭐 다른 집들이 그걸 먹는다면 나는 굳이 말리진 않아. 근데... 우리 집은 안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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