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경제 정책에 대입된 증오의 방정식

입력 2019-02-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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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산업부장

증오는 격정(激情)적이다. 격정에는 한계가 없다. 증오 역시 끝을 보기 힘들다. 쓰면 쓸수록 더욱 거칠어진다.

증오는 심판으로 직결된다. 심판의 명분은 분노한 여론이다. 여론은 기울어진 심판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론은 공동체 전체의 합치된 의견이 아니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력한 이해집단의 견해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의 증오는 정치를 움직였다. 증오로 대업(大業)을 이룬 권력은 호승심(好勝心)에 취해 증오의 방정식을 경제에 대입(代入)했다.

“우리는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대 99의 빈부 대결 구도를 부추기고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거나 적어도 과장된 표현이다. 대선 기간 후보자의 입이나 혁명기에 나옴 직한 구호가 현직 대통령의 일상적인 연설이 돼 버렸다. 문 대통령은 성장의 과실을 대기업, 부자들만 따먹고 있는 상황을 고치지 않으면 성장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소신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 역시 과도한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경제계층 편 가르기’다. 지지율 확보나 득표 활동일 수 있지만, 책임 있는 정부의 언사가 될 수 없다.

이 정부는 스스로 과장된 경제 어젠다(agenda:주제)를 제시하고 해법을 찾으려 한다. 곳곳에서 충돌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다. 대표 솔루션은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이다. 최저임금의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권 강화를 뼈대로 한다. 전(前) 정권에 대해 같이 증오하고 분노했던 지지자들을 달래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이 정부는 소주성을 통해 원한에 찬 평등주의를 실현하려 애썼다. 하지만 소주성이 모래성임을 증명하는 다양한 지표가 나왔다. 지난해 전 산업생산증가율은 2000년 지수 작성 이래 가장 낮았다. 제조업생산능력지수는 통계 작성 이후 최초로 감소했다. 하위소득계층의 소득은 더 줄었다.

문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종의 명현현상(瞑眩現象) 정도로 치부한다. 경제 체질이 바뀌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고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8일 기획재정부는 ‘국민이 궁금한 우리 경제 팩트 체크 10’이라는 홍보 영상과 문서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고, 고용의 질은 개선됐으며,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0.6%포인트 상승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실업률이 지난해 기준 3.8%로 2001년 이후 최고였으며, 한창 일할 30대와 40대 취업자가 전년 대비 10~13% 줄어든 것은 외면했다.

‘역효과 현상(backfire effect)’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돼도 자신의 실수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애초의 확신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의도적인 무시다. 이는 최악의 거짓말과 동의어다. 국가 권력은 이런 오류를 피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설을 앞두고 쏟아져 나온 각종 선심성 정책도 선한 의지만 가득한 불평등 해결책이었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23개 지역 사업(24조 원 규모)에 대해 면제됐다. 대의명분은 국가균형발전이다. 이를 놓고 과오투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본은 이미 1987년 국토균형발전 목적으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지방 도시의 산업도시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장기 불황으로 가는 실마리 중 하나를 제공했다.

설 연휴 직전 체결된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도 불안하다. ‘명절 밥상 민심’ 부여잡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사업의 경쟁력, 지속성, 안정성 등을 고려하면 사개가 맞다고 하기 어렵다.

증오를 화합으로 보듬는 방법은 일방에 의해 강요되는 ‘정의’와 ‘평등’과 ‘균형’이 아니다. 다수의 요구와 소수의 권리를 조화시키는 혜안(慧眼)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보고, 듣기 싫은 말을 정성으로 듣는 것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다.

정책 오류의 인정은 내면의 분노를 자아낸다. 하지만 이를 참고 복기해야 한다. 잘못을 수정해야 분노가 수그러진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는 1999년 발간한 ‘일본은 왜 몰락하는가’란 책에서 2050년 일본 몰락을 점쳤다. 그는 몰락의 원인이 ‘정치’라고 단언했다. 한국 정치에는 과연 경제를 몰락에서 구해낼 저력이 있는 것일까.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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