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이준웅 교수가 며칠 전 한 신문 인터뷰에서 내놓은 주장이다. “유튜브 구독자 10만~30만 명을 모아놓고 자기들끼리 대장질하는 선동적 포퓰리스트를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공개장에 끌어올려 토론시키는 거다. 그게 전통 언론의 할 일이다. 말이라는 게 절대 쉽지 않다. 한 시간 정도만 혼자 말 시키면 알아서 자폭한다. 누가 진짜 말이 되는 얘기를 하는지, 단지 약을 파는 건지 대중은 판별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바로 무릎을 쳤다. 말 많은 자들을 대중 앞에 세워놓고 장시간 말을 시켜서 옥석을 가리자는 이 주장이야말로 너도나도 뛰어드는 유튜브의 바다에서 ‘말전주꾼(말로 이간질하는 사람)’을 골라낼 수 있는 방법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혼자 떠들게 할 게 아니라 서로 대립하는 사람들을 마주 앉혀 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끝장 토론’을 시켜 국민들이 평가를 하도록 하자는 말이다.
캐나다의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가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캐나다 금광 재벌인 피터 멍크 부부가 기금을 대는 이 토론회는 2008년부터 5월과 11월, 매년 두 차례 열린다. ‘기후변화는 사실인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필요한가’,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인가’ 등 굵직하고 큼직한 문제들이 주제로 선정됐다.
우리도 유튜브 스타들을 불러 이런 식의 토론을 해봐야 하지 않나? 알맹이 없는 말싸움만 벌이는 정치인들과, 그들 주변에 기생하는 소위 ‘논객’들을 불러 이런 토론을 시켜야 하지 않나? 그래야 누가 진짜인지, 누가 포퓰리스트인지 드러나지 않을까? 가짜는 길어야 한 시간만 말을 시켜보면 밑천이 다 드러나지 않을까? 한 시간은커녕 10~20분 지나면 제 밑천 드러나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가짜가 수두룩할 것이다.
우리 국민 수준이 낮아서,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어서 안 될 거라고? 천만의 말씀. 재작년 원전공론위원회 시민참여단이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그나마 브레이크를 건 것이 국민 수준이 낮아서, 항상 이념에만 사로잡혔던 결과였다는 말인가? 제한 없이 묻고 답하는 토론이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닌가?
우리나라 방송들, 시청률 안 나와서 이런 토론회는 못 한다고? 그렇다면 온갖 프로에 연예인을 겹치기 출연시키고, 연예인 같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집어넣었더니 떠났던 시청자가 돌아왔나? 처음엔 캐나다의 매체만 중계했던 멍크토론회를 몇 해 전부터는 영국 BBC와 미국 C-SPAN 같은 채널에서도 생중계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만 더. 1858년 정치 초년병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한 링컨은 라이벌 스티븐 더글러스와 한 번에 세 시간씩 도합 일곱 번이나 노예해방을 주제로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링컨은 선거에서는 졌지만 당시 미국의 큰 신문 모두가 토론 전문을 가감 없이 게재해준 덕에 자신의 신념을 유권자들에게 그대로 알릴 수 있었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이 토론을 미국 사람들은 ‘위대한 토론(the Great Debate)’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위대한 토론’은 불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