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조연 덕분에 빛나는 주연

입력 2019-0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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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

입춘도 지나고 설날도 지난 요즘, 계절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어서 기온이 영하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한낮 햇볕은 따스함이 역력합니다. 식물원을 거닐며 자세히 바라보면 나무들도 무엇인가 변화가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떤 나무들은 겨울눈이 살짝 통통하게 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낮 햇볕이 비추는 단풍나무 줄기는 물기가 촉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역마다 또는 나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이즈음이 되면 부지런한 나무들은 벌써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이즈음 나무들의 활동을 우리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지런함의 주인공은 바로 나무의 뿌리들입니다. 뿌리들은 한낮의 짧은 태양빛에 녹은 토양 속 얼음으로부터 물을 흡수해 뿌리와 줄기의 세포들을 깨웁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뿌리 세포의 삼투현상 때문에 용질 농도가 낮은 토양의 물이 상대적으로 용질 농도가 높은 뿌리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뿌리는 물이 더 잘 빨려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 세포 내부의 용질 농도를 높이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물을 흡수하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제자리에서 물을 흡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을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뿌리를 생장시키기도 합니다.

나무들은 이 일을 우리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일찍 시작하는데, 나무의 겨울눈이 싹트기 2~3주 전에 벌써 뿌리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상처를 입게 되면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뿌리가 이미 물을 흡수하는 일을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좀 더 봄이 가까워지면 지리산 등지에서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채취하여 약수로 마시는데, 이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무가 다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은 나무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뿌리 세포들은 흡수한 물을 줄기로 올려 보내서 줄기 속에 잠들어 있는 세포들을 깨우고 다시 줄기와 가지에 붙어 있는 겨울눈들도 잠을 깨워 봄을 준비하게 합니다. 이렇게 깨어난 겨울눈들은 세포에 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살짝 통통하게 커지는 것입니다. 날이 점점 더 따뜻해짐에 따라 더 많은 물이 겨울눈의 세포들에 들어오면 그 물을 이용해 몸집을 더 키워 새로운 잎을 만들어 내거나 예쁜 꽃들을 피워내게 됩니다.

지난해 가을 겨울맞이를 위해 몸속에 있던 물을 빼내고자 가장 늦게까지 뿌리는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늦게까지 일했던 뿌리가 올봄을 준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깨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밤늦게 우리가 잠드는 것까지 지켜보시고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나서야 잠들고서도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챙기시던 어머님과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아직 가지만 앙상한 주변의 나무들도 곧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녹색의 싱싱한 잎들이 나와 나무를 뒤덮을 겁니다. 어떤 나무들은 색색의 꽃을 피우기도 할 겁니다. 남쪽 지방에서는 벌써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이렇듯 우리들 눈에는 생기 넘치는 잎들과 예쁜 꽃들이 먼저 들어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잎과 꽃들이 주연이라면, 뿌리와 줄기는 조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잎과 꽃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화려한 주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일해 온 뿌리와 줄기의 조연 덕분입니다.

요즘 어머님이 부쩍 연로하심을 느낍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님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자세히 알고 싶기도 합니다. 잘난 척 살고 있는 우리가 주연이라면 평생 우리를 바라보고 지켜주시는 부모님이 조연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고 의연하게 주연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평생에 걸친 조연 덕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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