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논리 거스르는 후판전쟁 10년 '디커플링'

입력 2019-02-12 18:15 수정 2019-02-1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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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가격 인상 의지...조선업계와 줄다리기

“업황이 좋으면 원자재 가격은 오르기 마련인데, 조선업이 최고로 좋았던 10년 전에도 후판 가격은 엄청나게 저렴했지요.”

수십 년간 철강회사에 몸담았던 한 업계 전문가의 하소연이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을 말한다.

지난 10년간 후판 가격은 철강과 조선업계와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시장 상황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즉 조선업이 호황이면 선박 수요 급증으로 후판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일반적인 논리가 오랜 기간 먹히지 않았다는 의미다.

2000년 초반부터 꾸준히 올라간 글로벌 후판 가격은 조선 업황이 피크였던 2008년에는 극에 달했다. 폭발적 선박 수주로 조선용 후판 수요가 급증하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이른바 ‘후판 대란’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후판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국내 철강업체들은 조선사들에 수입산보다 평균 50만 원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했다.

업황에 상관없이 조선사의 요구가 후판가에 반영된 결과다.당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빅3의 수주 성적은 글로벌 최고였지만, 저가 수주에 따른 수익성 차원에서 후판가 인하를 읍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철강업계는 이를 받아들였고, 심지어 한 철강업체는 ‘수출 전면 중단’을 선언하고 국내 조선사 대상으로 내수 우선 공급 방침을 정할 정도였다. 당시 수입산 후판가가 톤당 200만 원에 달했다면 우리 판매가는 130만~150만 원 선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조선업에도 예고없던 불황이 닥첬다. 조선업계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단행됐으며, 후판 역시 공급과 수요 모두 급감했다. 극심한 불황이 오랜 기간 이어지자 100만 원대가 넘어갔던 후판 가격은 톤당 5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저가 판매로 오랜 기간 후판 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한 철강사들은 결국 2017년 말 가격 인상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조선업계는 목마른 시절이었다. 철강업계는 2017년 말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후판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말 기준 후판 가격은 60만 원 후반~70만 원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 3사는 올 들어서 또다시 후판 가격 인상을 선포했다. 조선업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고려하겠다는 차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선주들의 중국산 후판(강재) 물량을 줄여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국산 인기가 치솟은 상황이다. 하지만 조선사들은 ‘국내산보다 평균 10만 원가량 저렴한 중국산 구매’라는 카드를 내보이면서까지 맞서고 있어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이 호황이든 불황이든 우리는 오랜 기간 조선사들의 사정을 최대한 반영해 후판가를 낮게 책정해왔지만, 가격 인상에만 초점이 맞춰지며 부정적 이미지만 키워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조선업계는 “철강사에는 수익이 문제라면,우리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철강업체는 전체 사업 중 비중이 낮은 후판 부문에 대한 수익성이라는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우리는 회사 전체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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