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정치인의 확증편향

입력 2019-02-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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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언어의 역할은 비단 의사소통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는 상상을 야기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우리가 ‘보는’ 행위와 태도를 구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언어는 특정 사안 혹은 사물, 그리고 사고 체계를 새롭게 구조화시켜 나름의 ‘세계를 창조’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 같은 언어의 역할은 정치적 영역에서 특히 부각된다. 이번 설 민심을 두고 여야가 다른 소리를 하는 이유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세계의 창조’와 무관하지 않다. “재판 결과에 대한 비판이 굉장히 많았고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재판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견강부회 식으로 대선불복을 들고나온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정치인에 대한 분노도 함께 있었다”, “못살겠다, ‘대통령 임기 언제까지냐’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 설 민심을 전한다며 여야가 쏟아낸 ‘말’들이다. 언론이 아전인수식 주장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이런 아전인수식 주장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그래도 설 민심을 가감 없이 들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노력도 사라졌다. ‘자기 편’만 만나고 나서, 그것이 ‘설 민심’이라고 우기는 모양새다.

‘자기 편’의 주장을 민심이라고 우기면, 나중에는 민심이 진짜 그렇다고 생각하는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문제이다. 이런 식으로 자꾸 생각하게 되면, 특정 사안의 문제점이 왜곡되고, 그래서 제때에 정확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런 현상이 최근 두드러진 또 다른 이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정치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요새 많은 이들은 SNS 중독 상태다. 음식점은 분명 음식을 먹으러 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음식 사진을 찍기 위해 가는 것 같은 사람이 많다. 이런 행위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일종의 ‘구애 심리’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격리 현상이 심화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즉,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의 직접 접촉의 기회가 과거보다 줄어가는 추세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직접 접촉하고, 직접 말을 들어야 하는 분야인 정치에서조차 SNS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SNS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유유상종’ 현상이다. 정치인이 SNS상에서 자주 접촉하는 인물의 대부분은, SNS 계정주인 정치인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정치인이 SNS에 매몰되다 보면, 민심을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당연히 발생한다. “좋아요”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이것이야말로 민심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이런 착각을 하게 되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소수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의도와 생각을 그냥 밀어붙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힘을 가진 정치인이 그런 착각에 빠지면 독재적 행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이런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 상당수는 자신이 착각에 빠졌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져야 함은 당연한데,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역사가 진행될수록 민주주의의 기본인 역지사지와 사람에 대한 존중,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확증편향이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점점 퇴보하게 된다. 국민의 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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