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열전]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경제학자, 사마천

입력 2019-0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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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보다 2000년 먼저 “경제의 자유”를 말하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열정과 행위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러한 방향을 이끄는 것을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종국적으로는 공공복지에 기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보다 무려 2000년 이전에 나온 동양의 고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농공상’ 신분귀천에 도전장

“사람들은 단지 자기 재능에 따라 역량을 극대화하여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값이 저렴한 물건은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값이 비싼 곳으로 그 물건을 가져가 팔려고 하고, 어느 한 곳에서 물건 값이 비싸게 되면 곧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값이 저렴한 곳에서 물건을 들여오게 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생업에 힘쓰고 자기 일에 즐겁게 종사하여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밤낮으로 정지하지 않으며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가서 찾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가지고 와서 무역을 한다. 이 어찌 ‘도(道)’와 자연의 효험이 아니라는 말인가?”

바로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화식(貨殖)’이란 ‘재산을 늘림’ 혹은 ‘상공업의 경영’이라는 의미이다. 사마천이 지칭하는 화식에는 이밖에도 각종 수공업과 농어업, 목축업, 광산, 제련 등의 경영을 포함하고 있다.

사마천을 단지 ‘사기’를 저술한 역사가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탁월한 경제학자라 할 수 있었다. 이른바 ‘사농공상(士農工商)’ 즉, 신분의 귀천이 선비-농민-공장(工匠)-상인의 순서로 간주되던 사상은 중국을 비롯하여 그 영향을 받은 동북아 사회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주류적 지위를 점해 왔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낸 것이 다름 아닌 사마천의 ‘화식열전’이었다.

사기 ‘화식열전’, 경제의 바이블

사마천은 “국가는 굳이 간섭을 강행할 필요가 없고 상인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생산과 교환을 하도록 인도해야 하며 더구나 국가가 상인들과 이익을 다퉈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사회 발전에 있어서 공업과 상업 활동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그것은 사회 발전의 필연이라고 인식하였으며, 상공업자의 이익 추구의 합리성과 합법성을 인정하였다. 그는 특히 물질재부(物質財富)의 점유량(占有量)이 최종적으로 인간 사회에서의 지위를 결정하며 경제의 발전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경제사상과 물질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미 사마천은 거시 범주만이 아니라 미시 범주에서 풍부하고 심오하며 체계적인 경제정책 주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장과 유통 그리고 분업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을 논증하면서 이를 ‘화식열전’이라는 하나의 학설 체계에 담아냈다.

사마천의 이 ‘화식열전’이야말로 장기적인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의 억압 속에서도 인간 본성과 중국이 지니는 지대물박(地大物博), 천혜의 상업 환경에 부응하여 이를 천재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백성들에게 상업 활동의 정당성을 확인해주고 누구든지 기회를 잡고 노력을 다해 부를 쌓을 수 있다고 ‘격려’했던 경제 바이블이었다.

▲사마천은 중국 고전 ‘사기’를 저술한 역사가로 알려져 있지만,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보다 2000년 먼저 ‘시장경제’의 원리를 설파한 선구적인 경제학자였다. 그의 그러한 경제사상은 사기의 ‘화식열전’에 잘 나타나 있다.
▲사마천은 중국 고전 ‘사기’를 저술한 역사가로 알려져 있지만,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보다 2000년 먼저 ‘시장경제’의 원리를 설파한 선구적인 경제학자였다. 그의 그러한 경제사상은 사기의 ‘화식열전’에 잘 나타나 있다.

“부유하게 되면 즐겨 덕을 행한다”

사마천의 눈에, 사업 현장의 ‘화식가’들은 전쟁터에서 계책을 내고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하는 모사(謀士)와 지자(智者)들에 비하여 전혀 뒤지지 않았다. 사마천은 인간이 부를 추구하는 것을 불변의 진리로 보았다. 이로부터 “천하 사람들이 즐겁게 오고 가는 것은 모두 이익 때문이며, 천하 사람들이 어지럽게 오고 가는 것도 모두 이익 때문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결론이 나오게 된다. 비록 현실에서 빈부의 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지혜로운 자는 남음이 있고, 졸렬한 자는 부족하게 되며”, “수완이 있는 자는 능히 재부(財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반면, 무능한 자는 가지고 있던 재산도 와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결국 객관적 경제 규율의 ‘자연의 효험’ 혹은 ‘도(道)’에 부합된다고 지적한다. “경제란 흘러가는 물처럼 유통의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그가 우리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는 정당하게 부를 추구하는 활동은 마땅히 어떠한 속박도 받지 않아야 하며, 모름지기 국가란 인간의 영리 추구활동에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재능에 따라 역량을 극대화하여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역설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품의 가격 변동과 수량 변화는 시장경제 규율에 의하여 조정되고 시장에서의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절하에 모든 사람이 능히 합리적인 재부를 획득함으로써 사회 경제가 가장 적합한 상태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과 인민공사라는 인위적 압제에서 벗어나 개혁개방을 주창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사마천 사상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사마천이 찬양하는 화식가들은 모두 부유하면서도 덕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와 노동으로써 부를 이루었고, 재산을 쌓아감에 있어 도(道)가 있었으며, 그것을 쓰는 데 도(度)가 있었으므로 “정치에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고, 백성에 방해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사치와 욕망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무리들이 아니었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도 아니었으며, 인의(仁義)를 널리 시행하고 이(利)를 중시하면서도 의(義)를 더욱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범여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가난한 친구들과 멀리 사는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완(宛) 지역의 공씨(孔氏)는 “제후들과 교류함으로써 통상무역을 통하여 커다란 이익을 얻었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어 큰 명성을 얻었다.” 공씨의 이러한 우아하고도 대범한 태도는 사람들의 찬양과 존경을 받았고, 사람들마다 그것을 본받으려 하였다.

이야말로 사마천이 말하는 “부자가 세력을 얻게 되면, 그 명성과 지위가 더욱 빛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군자가 부유하게 되면 즐겨 덕을 행한다”면서 극구 찬양하였다.

▲사마천 무덤중국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에 있는 사마천의 무덤. 무덤 위 나무는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심은 측백나무라고 전해지는데, 측백나무 잎사귀는 앞뒤가 없고, 겉과 속이 같아서 선비의 상징으로 불린다.
▲사마천 무덤중국 섬서성 한성시 지천진에 있는 사마천의 무덤. 무덤 위 나무는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심은 측백나무라고 전해지는데, 측백나무 잎사귀는 앞뒤가 없고, 겉과 속이 같아서 선비의 상징으로 불린다.

무조건적인 ‘시장 만능’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시장 만능주의자는 아니었다. 흔히 애덤 스미스를 시장 만능주의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오히려 일체의 독점과 특권을 반대하고 특권층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없애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독점적 이익과 경제 집중을 반대했으며, 동시에 공공의 복지, 학교, 사회간접자본 등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이른바 ‘경제 자유주의’, 혹은 ‘경제 방임’이란 억압받는 사람을 위한 ‘경제 자유주의’인 것이었을 뿐, 결코 부자만을 위한 ‘경제 자유주의’가 아니었다.

사마천이 역설하는 바의 ‘경제 자유주의’가 애덤 스미스의 주장과 흡사하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사마천이 주장하는 ‘경제 방임’이란 대중의 입장에서 국가가 사적 경제에 대한 억압 및 간섭 그리고 국가 독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한 강조였다. 즉, 사마천은 국가 경제에 심각한 폐단과 문제점이 나타나게 될 경우, 일정한 교화와 인도를 의미하는 ‘교회(敎誨)’ 그리고 개입과 강제를 포함하는 ‘정제(整齊)’라는 국가의 조정 조치가 필요함을 역설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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