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은 연구실 안에 있으면 각기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일인성주(一人城主)가 되기 쉽다. 전공이 세분화될수록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일본말이라 조금 쓰기 주저되지만, 이른바 ‘나와바리(순화된 우리말: 구역)’라는 것이 있어 다른 교수의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서로 얘기하지 않는 것을 금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전공이 같아도 어려서부터 토론에 익숙지 않은 탓에 자칫 논쟁이 감정적으로 흐를 것을 우려해 시작하지 않거나 조금 어색해지면 멈추는 경우가 많다. 동료그룹(peer group) 간의 논의가 부족하더라도 연구실 내의 대학원생 등 제자들과의 논의는 활발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직된 대학의 분위기는 학생들이 선생과 논쟁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공을 불문하고 학문을 논하는 것은 학자의 기본이다. 영미의 대학은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전통을 이어, 오후 시간 패컬티 라운지(faculty lounge)에 모여 다과를 하며 전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토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문이 지금처럼 분화되기 전, 동서를 막론하고 학자들은 철학, 과학을 가릴 것이 없이 함께 논의하였다. 지금은 학문의 과도한 갈라치기, 즉 분과학(分科學)으로 인해 자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 다른 분야를 쳐다볼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엄두도 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때로는 인접 학문 분야의 상식적 수준의 논의라도 다른 학문 분야에 큰 깨달음을 주고 발전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미국 생물학자 하딘(G. J. Hardin)은 1968년 ‘사이언스’지에 “목초지를 공유로 하면 소를 방목해 황폐해지고 말 것이므로 사유화함으로써 환경을 살릴 수 있다”는 취지의 논문 ‘The Tragedy of Commons(공유지의 비극)’를 게재했다. 이 과학 논문은 경제학에 큰 영향을 주어 후에 노벨경제학상이 나오기도 했다. 나아가 법학 분야에서도 저작권을 보호하는 정당화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생물학, 경제학, 법학이란 서로 이질적인 학문을 넘나드는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학문의 놀라운 발전이 가능했다. 벌이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수분(受粉)을 돕듯 모름지기 벌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학문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기도 한다.
20세기 전후 비엔나는 학문과 예술의 중심이었다. 한스 켈젠(Hans Kelsen)은 역사상 법학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학자 중 하나다. 고 심헌섭 교수의 번역에 따르면 켈젠의 순수법학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 클림트(Klimt)의 신예술, 쇤베르크(Schoenberg)의 12음계 음악이 있는 비엔나의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철학·심리학, 미술, 음악이 법학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백남준이 뒤샹(Marcel Duchamp)과 케이지(John Cage)에게 크게 영향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음악으로 시작하여 미술에 천착하되 미술을 음악처럼 했던 백남준은 벌과 같은 예술가였다. 필자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과 관련한 저작권 논문을 쓰고 있다. 마음먹은 지 13년이나 되었지만 능력 부족으로 갈지자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글이 나올지 모르지만, 백남준의 예술이 법학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뛰곤 한다.
필자는 올해 3월부터 연구년을 갖게 되었다.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이 글을 마지막으로 ‘대방로’ 집필을 마친다. 지난 1년 반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