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3년째 ‘코끼리(대규모 기업 인수·합병)’ 사냥에 나서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버핏은 2016년 320억 달러(약 36조 원)에 우주항공용 금속부품 제조업체인 프레시전 캐스트 파츠를 인수한 이후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의 현금 보유액은 작년 9월 30일 시점에 1036억 달러로 5개 분기 연속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16년 프레시전 캐스트 파츠를 인수할 당시 현금 보유액이 730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였는데, 지금은 이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수중에 어머어마한 현금을 쥐고도 버핏이 새로운 코끼리 사냥에 나서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의 고민이 있어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버핏이 새로운 사냥감에 눈독을 들일 때마다 사모펀드 등의 펀드들이 경쟁적으로 달라붙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민간 펀드들의 투자 여유 자금은 사상 최대인 2조1000억 달러로 10년 전의 거의 2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이는 버크셔의 현금 보유액보다 20배 이상 많은 규모다.
스미드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빌 스미드 최고경영자(CEO)는 “버크셔가 인수 대상을 찾은들 사모펀드들이 버크셔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달려들어 인수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버핏 역시 작년 연례 주주서한에서 “매력적인 인수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올해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버크셔가 2018년 4분기(10~12월)에 적자로 전환하면서 투자 여력이 녹록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버크셔는 23일 작년 4분기에 253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산하에 둔 식품 대기업 크래프트하인즈에서 거액의 손실이 발생한데다 4분기 주가 하락으로 보유하고 있던 상장기업들 주식에서 큰 손실이 났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버크셔는 1730억 달러 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만 227억 달러의 손실이 났다.
크래프트하인즈의 부진은 버핏의 투자 성패를 평가하는데 상징적인 것이다. 버핏은 2013년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과 손잡고 230억 달러에 하인즈를 인수했다. 2015년에는 경쟁사인 크래프트와 합병시켜 크래프트하인즈로 재탄생시켰다. 이후 3G 캐피털 주도로 비용 절감을 추진했으나 가공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이번 큰 손실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 M&A에 대한 버핏의 의욕이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다. 버핏은 23일 작년 4분기 실적과 함께 발표한 ‘연례 주주서한’에서 1000억 달러가 넘는 현금 사용처에 대해 “버크셔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에 대형 M&A가 없었던 점에 대해선 “인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2019년은 계속해서 대형 M&A(코끼리)를 희망하고 있다”며 “이런 거대 인수 가능성에 대해 적는 것만으로도 내 맥박이 급상승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