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말 기준 가맹산업 현황’을 보면 처음으로 24만 개를 넘어선 전국 프랜차이즈 가맹점 중에서 절반이 치킨 등 외식업이었다. 외식업은 치열한 경쟁 때문에 다른 업종보다 평균 사업기간도 짧았다(4년 7개월).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른 작년에 가맹점수가 늘어난 점이 의아할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영업 말고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을 안 하면 불안하니 일단 창업은 하는데 결국 폐업 시기가 앞당겨진다는 얘기다.
치킨집을 필두로 한 한국 외식업 자영업자들의 대표 영업방식 중 하나가 배달이다. 아파트 같은 집단주거 지역에 모여 살고 인건비가 싼 편이었던 한국에서 치킨점이나 중화요리점의 음식 배달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오래된 서비스다. 직접 고용한 배달 인력을 쓰거나 사장님이 직접 배달하다가 최근엔 최저임금 상승으로 자체 배달인력을 없애는 대신 배달 전문서비스(배달 앱)를 이용한다.
그런데 배달 앱의 등장은 식당 자영업자들을 또다른 시험에 빠지게 하고 있다. 몇 년 전 배달 앱 등장 초기만 해도 식당 자영업자들은 이를 환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처음 같지 않다. 식당이 잘 되고 안 되고가 디지털 배달 플랫폼에 등록하냐 못하냐, 광고비를 더 내고 상단에 올라가느냐 마느냐로 결정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서다. 또, 예전엔 동네 식당 위주로 이뤄지던 음식 배달이 배달 앱 등장 이후 맥도날드, 파리바게뜨, 이디야커피, 빕스 등 외식 대기업들의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면서 무한경쟁에 돌입하고 있어서다.
음식 배달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도 최근 몇 년 새 핫한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매끼니 요리할 시간이 없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1인 가구, 맞벌이 가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금융 기업인 UBS는 작년 7월 ‘주방이 사라진다?(Is the Kitchen Dead?)’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더 이상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시대가 아니라 만들어진 음식을 시켜먹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이 온다고 분석했다.
실제 글로벌 IT기업들이 배달 산업을 블루오션으로 꼽으며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차량공유 업체인 우버가 ‘우버이츠’를 통해 음식배달 1위 업체를 바짝 뒤쫓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도 아마존 레스토랑이라는 음식배달 사업을 시작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차량공유 업체 그랩이 ‘그랩프레시’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고, 중국에서는 IT공룡 알리바바가 ‘어러머’, 텐센트가 ‘메이퇀덴핑’이라는 배달 앱으로 경쟁하고 있다. 최대 5조 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배달 앱 시장도 쿠팡이 식음료 주문서비스 ‘쿠팡이츠’로 올 상반기 중에 가세한다.
음식배달 서비스 시장의 급팽창은 앞으로 택시업계와 차량공유 업계의 갈등처럼 식당 자영업자(외식업)와 배달앱 업계의 극한 대립으로 확산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오프라인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 외식 자영업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인 배달 앱으로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이미 수수료, 광고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 호시탐탐 이 시장을 노리는 국내 IT기업은 물론 머지않아 우버나 그랩 등까지 상륙할 경우 소상공인들의 생존이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기술 혁명으로) 많은 사람이 19세기의 마차몰이꾼이 아닌 말의 운명을 맞을 수 있다. 마차몰이꾼은 택시 기사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말은 점점 고용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해 결국에는 완전히 퇴출됐다”고 썼다.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의 발전은 미래 사회에 일자리, 아니 우리 종(호모 사피엔스)의 정체성까지 바꿀지 모른다고 하라리는 경고한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산업 간 갈등을 해소하는 사회적 컨센서스 마련, 고용방식의 변화, 교육을 통한 미래인재 양성 등의 대책을 한시라도 빨리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