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진즉에 열렸어야 할 회담이 이제야 열리고, 진즉에 해결할 수도 있었던 일들을 이제야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1945년 광복 이후, 이념이나 체제보다 민족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남과 북이 그처럼 날을 세우며 적으로 갈라서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6·25라는 비극적인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고, 70년 이상을 오가지도 못한 채 피눈물로 서로 그리워하며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북미 정상회담을 이처럼 조바심을 내며 지켜봐야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우리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는지를 반추해 봐야 한다. 그 첫 번째 원인은 당연히 일제가 나라를 강탈해 감으로써 우리 스스로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여 우리 민족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다는 데 있고, 두 번째 원인은 이념과 체제 논리에 의해 민족이라는 가치가 매몰되어 버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 스스로도 ‘통일’을 민족의 절대적 과제로 여기지 않고, 할 수도 있고 안 해도 무방한 선택 사항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도 남과 북이 더 멀어지는 이유로 작용했음을 반추해 봐야 할 것이다.
반추는 ‘反芻’라고 쓰며 각 글자는 ‘되돌릴 반’, ‘꼴 추’라고 훈독한다. 글자에 따라 직역하자면 ‘꼴을 되돌린다’는 뜻인데 ‘꼴’은 말이나 소 등에게 먹이는 풀을 이르는 말이다. 소, 기린, 사슴, 염소 등은 위가 4개로서 먹었던 꼴을 되새겨 제2, 제3, 제4의 위를 거치게 함으로써 소화 흡수하는 동물이다. 이런 소화 작용 즉 되새김질을 반추라고 하는데 여기서 의미가 확장되어 어떤 사태의 의미를 곱씹어 되새기며 음미한다는 뜻도 갖게 되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되려 하는 지금, 우리는 남북이 왜 갈라지게 되었는지를 반추해보며 다시금 통일을 민족의 절대적 과제로 인식하려는 마음을 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