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우리나라 '최초의 경찰청장' 백범 김구의 흔적을 찾아서

입력 2019-02-27 18:07 수정 2023-05-2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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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품이나 장소, 1호 가게 등을 찾아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관련 산업을 이야기해 보는 코너입니다. 다양한 산업에서 '우리나라 최초', '우리나라 1호' 타이틀을 가진 제품과 장소, 가게 등을 통해 이들의 성공신화, 혹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은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은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재영 기자 ljy0403@)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흔히 '민족의 지도자'라고 부른다. 그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통일 운동에 앞장서면서 한평생을 보냈기 때문이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백범 김구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찾던 도중 특별한 내용을 확인하게 됐다. 바로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의 경찰청장이라는 것이다.

김구 선생은 191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안창호 선생에 의해 초대 경무국장으로 임명됐다. 경무국장은 현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교민들을 보호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키며 밀정을 찾아 나서 처단하는 업무를 총괄했다.

그는 청년들 20여 명과 함께 3년여 동안 이런 업무를 수행했다. 경무국장의 임기는 1922년 8월까지 이어졌다.

당시 경무국장이었던 김구 선생은 일본의 최대 위협이었다. 이에 일본은 김구 선생을 사살하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일제 밀정이었던 선우갑, 강린우가 김구 선생의 사살조로 붙었으나 이들을 가려내 추방했고, 일본 영사관 첩자였던 김도순을 총살했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을 독살하려던 황학선을 체포해 처형했다.

김구 선생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독립운동가가 희생됐을지 모른다.

▲백범 김구 선생은 자신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나라, 우리 조국의 독립과 통일만을 갈망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백범 김구 선생은 자신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나라, 우리 조국의 독립과 통일만을 갈망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26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백범김구기념관을 찾았다. 기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김구 선생의 동상이었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김구 선생의 모습은 근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인품과 인덕이 녹아 있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에서

1층 전시관에는 김구 선생의 연보를 시작으로 영상실, 어린 시절, 동학·의병활동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1949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일생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2층 전시관에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의 활동부터 백범일지를 출간하기까지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의 활동을 통해 김구 선생이 최초의 경찰청장을 맡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당시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고자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임시정부는 김구 선생의 국내에서 활동을 높이 평가하며 경무국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약 3년간 경무국장을 맡으면서 임시정부 주요 인사를 보호하고 일제 밀정을 찾아내 설득하거나 처단하면서 임시정부를 수호했다.

이후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국무령을 역임했다.

▲백범김구기념관 옆으로 김구 선생의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1924년 중국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최준례 여사와 1999년 4월 합장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백범김구기념관 옆으로 김구 선생의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1924년 중국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최준례 여사와 1999년 4월 합장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2층 전시관에는 김구 선생을 추모하는 공간도 있다. 이곳에서는 김구 선생의 묘역을 바라보며 추모할 수 있도록 했는데, 기념관 옆에 위치돼 있어 직접 묘소를 찾아갔다.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평일인데도 많은 시민이 이곳을 찾아 김구 선생을 추모했다.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김구 선생 묘역을 찾아 참배한 흔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을 찾은 김남배(64) 씨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김구 선생의 위대함을 알아야지. 그런 분이 있으니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행복하게 먹고 사는 게 아냐"라며 "젊은 사람들이 김구 선생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당부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이재영 기자 ljy0403@)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일본의 위협에 항시 긴장해야 했고,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김구 선생은 일생을 조국의 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며 겨레의 큰 스승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독립과 통일된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위해 첫걸음을 내디뎠던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의 발자취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며,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을 일깨워준다.

▲정부는 2017년 서울 서대문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역사를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승하고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나섰다.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의 기념관은 2021년 8월 완공될 예정이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정부는 2017년 서울 서대문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역사를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승하고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나섰다.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의 기념관은 2021년 8월 완공될 예정이다. (이재영 기자 ljy0403@)

김구 선생도 일제 치하에서 갖은 옥고를 치렀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서대문형무소는 김구 선생 외에도 수많은 독립투사를 가두고 고문한 현장이 고스란히 남은 곳이다.

평일 오후지만 이곳에도 수많은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일제 치하에서 이뤄진 수많은 만행을 보고 듣고 분노했다.

지하 옥사, 사형장, 망루 등이 보존됐으며 이곳에 수용된 애국 열사나 지사들이 어떤 고문을 받고 희생됐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지를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이곳에서 어떻게 희생됐는지,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상대로 어떤 고문과 악랄한 행동을 자행했는지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객들은 울분을 토했고,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이렇게 현장을 눈으로 보고 당시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이곳이야말로 꼭 보존해야 할 역사적 현장일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우리 애국의사·열사·지사의 피와 눈물과 한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우리 애국의사·열사·지사의 피와 눈물과 한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오늘날 우리에게 유명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그의 자서전이다. 백범일지 상권은 1928년 독립전선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두 아들에게 집안 내력과 자신의 지난 일을 알리고자 유서 대신 쓴 글이 담겨 있다.

'백범일지' 하권은 우리 민족에게 독립운동의 경륜과 소감을 알리려고 쓴 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에 정착한 1941년 집필을 시작했으며, 임시정부 활동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그는 "나는 우리의 젊은 청년들 속에서 참으로 크고 훌륭한 애국자와 빛나는 일을 하는 큰 인물이 쏟아져 나올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은 누구나 저마다 이 나라를 제 나라로 알고 평생 이 나라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니, 이러한 뜻을 가진 동포들에게 이 '범인의 자서전'을 보내는 것"이라며 백범일지 출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재영 기자 ljy0403@)
(이재영 기자 ljy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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