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누굴 위한 ‘자사주 갖기’ 운동인가

입력 2019-03-11 05:00 수정 2019-07-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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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금융부장

올해 금융권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됐지만, 눈에 띄는 이슈가 없다. 이미 주요 쟁점 사안들이 정리된 탓일까. 아니면 주총에서 다뤄질 만한 이슈들이 사전에 묻힌 탓일까. 올해는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나마 KB국민은행과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노조가 잇따라 도입을 공식화하며 노동이사제가 이번 주총에서 다뤄질 만한 이슈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이 백승헌 변호사에 대한 사외이사 후보추천 주주제안을 자진 철회하자, 이마저도 유야무야되고 있는 모습이다.

국책은행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정관상 근거 규정이 없다. 또 금융당국의 난색으로 인해 구체적인 도입 절차를 밟아 나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노조가 “후진적인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 건전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바로 노동자 경영참여”라고 외쳤던 성명에 힘이 빠진다.

결국, ‘뜨거운 감자’ 없는 금융권의 주총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노조를 중심으로 자사주를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은 10% 보유를 목표로 꾸준히 자사주 매입에 열중하고 있다. 현재 자사주 6% 이상 확보하며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정부가 예금보험공사(18.43%)의 지분을 매각한다면 우리사주조합의 최대주주 등극 가능성도 열려 있는 셈이다.

최근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지분 확보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의 우리사주조합은 은행과 손해보험, 증권 등 12개 계열사 2만여 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1인당 2000만 원 안팎을 모아 4000억 원 정도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도 비슷한 움직이다. 신한금융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지급한 성과급에서 절반을 우리사주조합에 출연하기로 했다. 합병 이후 수년간 제도통합 문제 등 현안 해결을 위해 힘을 쓴 하나금융은 노조 중심으로 자사주 확보는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자사주 확보에 취중하는 의중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사주조합은 종업원의 근로 의욕을 높이고 재산 형성을 촉진시키기 위해 만든 종업원지주제의 일환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종업원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해 기업의 경영과 이익분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사주조합은 대개 회사의 노조가 운영한다. 때문에 우리사주조합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향후 경영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포석으로 활용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회사 경영에 대해 노조가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다.

과거 자사주 매입은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이 책임경영 의지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노사 관계’를 도출한다는 경영적인 판단에서는 성격이 다르다. 우리은행 노조가 2017년 말 우리사주조합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향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주주제안’으로 변경한 것이 그 방증이 아닐까.

조합의 지분이 늘어날수록 향후 주총에서 ‘노동자의 입장’이 더 강하게 반영될 수 있다. 또 투명한 경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는 지속 가능 금융회사로 자리매김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임금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며 우리 노동자들은 경영진이 그래왔듯이 공익을 사익 추구에 종속시키는 파렴치한이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금융노조의 성명이 이를 대변한다.

금융회사는 국민 생활 경제 안정에 관심이 없고 그저 돈 장사에만 몰두하는 이기적인 조직이 아니다. 은행들은 여전히 포용적 금융보다 전당포식 가계금융을 통한 안전자산 굴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조직도 아니다. 조합원의 재산 형성 촉진에만 목적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지난해 국내 4대 금융지주의 배당금 총액이 2조5000억 원을 돌파했다. 7년 전 대비 2배가 넘는 규모다. 이는 금융당국의 고배당 제한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순익 때문에 배당 확대를 막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배당 확대를 통한 주주 환원정책이 꽃을 피우게 됐다. 그러나 어쩌면 같은 조직, 같은 구성원이라 할 수 있는 금융회사 조합원들이 주주 환원정책의 주 대상이 된다면 어떨까. 금융산업의 공익의 실종은 더욱 가속화하지 않겠는가.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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