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MLB와 ‘오프너’…전통과 변화의 대결

입력 2019-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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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뉴스랩부장

스포츠 팬들에게 3월은 ‘야구’가 시작되는 달이다. 국내에서는 2019시즌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12일부터 시작하며, 지난달 21일부터 시범경기를 펼친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이달 20일부터 정규시즌에 돌입한다.

지난해 MLB에서 가장 회자된 단어는 단연 ‘오프너(Opener)’다. 이는 선발 투수 대신 1~2회를 막아주는 불펜 투수를 뜻하는 용어다. 구위가 강한 불펜 투수를 선발 투수 앞에 등판시켜 상대 팀의 가장 강한 타선인 1~5번을 상대한 뒤, 선발 투수(사실상 롱릴리프)에게 넘기는 개념이다. 통상적인 ‘선발 투수→중간 계투→마무리 투수’가 아니라 ‘오프너→롱릴리프(기존 선발투수)→중간 계투→마무리 투수’로 투수 포지션을 변칙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오프너가 화제가 된 이유는 통계에 의한 유용성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발 투수라도 3번째 타순부터는 실점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바로 그 전제다. 오프너는 선발 투수 등판 전에 1회를 막아줘, 이후 등판할 진짜 선발 투수는 1~3번 타순을 한 번 덜 상대하는 이점을 누리게 된다. 결국 상대의 경기 전략을 처음부터 비틀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2010시즌 이후 MLB 선발 투수들의 평균 이닝은 해마다 줄어 6.0이닝에서 8년 만에 5.4이닝까지 떨어졌다. 결국 모자란 이닝 수를 다수의 중간 계투와 마무리 투수로 버티다 보니 시즌 내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진다. 물론 선발 투수진을 비싼 값의 뛰어난 선수로 꾸민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는 돈이 늘 부족한 스몰마켓 팀에는 꿈같은 일일 뿐이다.

오프너를 처음으로 본격 도입한 팀은 2018시즌 ‘탬파베이 레이스’다. 사실 대형 투수들을 영입할 자본력이 없는 스몰마켓 팀이다 보니,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육지책으로 보는 것이 맞다. 1~3선발이 출전하는 게임은 기존 방식대로 운용하고, 취약한 4~5선발 게임은 오프너 시스템을 적용했다.

언뜻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야구의 전통을 무시했다는 거센 ‘반발’은 여기저기서 나왔다. 1901년 양대 리그가 만들어지며 MLB가 현재의 모습을 확립한 이후 100여 년, 야구라는 스포츠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선발 투수의 위치를 무색케 한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유명 선발 투수인 매디슨 범가너는 “내 앞에 오프너를 세우면 야구를 그만두겠다”라고 선언한 데 이어, 잭 그레인키 역시 “오프너는 선발 투수의 연봉을 깎겠다는 말”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성공한 모험’은 대세가 되는 법이다. 오프너 시스템을 앞세워 탬파베이가 5년 만에 시즌 90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같은 해 포스트시즌에서 처음으로 오프너를 이용했고,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2019시즌부터 오프너를 사용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결국 올 시즌 MLB는 오프너의 보편화를 실험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나라로도 퍼지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 NPB에서는 오프너를 도입하겠다는 감독들의 인터뷰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어느 정도 뒤따를 것은 자명하다. MLB보다 먼저 일명 ‘벌떼야구’로 쓰고 ‘극약처방’이라고 읽는 한국식 오프너를 일부 감독이 구사한 게 사실이니깐.

변화는 반발을 수반한다. 아무리 타당하다고 해도 기존 시스템을 통해 득을 얻었거나 얻을 수 있는 집단들은 결국 과거로의 회귀를 원한다. 범가너나 그레인키의 발언도 기존 선발 투수 시스템이 무너지면 자신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을 알기에 나온 것 아니겠나.

어느 사회에나 ‘올드스쿨(old school)’을 거스르는 변화는 쉽지 않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변화를 막아서는 움직임은 카풀 도입, 최저임금 인상, 탄력근로제 도입 등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아예 태극기 부대처럼 지난 9년의 보수정권 회귀를 원하는 집단도 있다. 오늘 우리는 MLB의 ‘오프너’처럼 새로운 실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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