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정상회담(2월27∼28일·하노이) 결렬 이후 침묵을 지켜온 북한이 '협상중단'과 '미사일 실험 재개'에 나설 수 있다며 미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이 '빅딜' 입장을 고수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데 대한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응수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미간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5일 평양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도,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와 핵·미사일 시험 유예를 계속 유지할지에 대해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상의 회견 내용은 '협상중단'과 '미사일 실험 재개'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공세적이다.
북한은 작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방북 때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같은 해 4월 20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해 그 입장을 공식화했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보름만에 실험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북한이 과거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가 이뤄졌던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재건하는 모습이 위성을 통해 포착됐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지난해부터 시작된 화해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강대 강'의 대치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과 강대강 대결을 하겠다기 보다는 미국을 압박해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기싸움의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해온 대표적 대외 분야 성과(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를 파괴할 수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압박 수단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은 것이다.
또한 최 부상의 회견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에서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내세워 '제재 강화'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등 북한을 압박하는 상황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보인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지난 7일(현지시간) '빅딜' 입장을 고수하며 "대화에 대한 결정은 북한에 달려있다"고 공을 북한에 넘긴 데 대해 '우리는 양보할 생각이 없으니 미국이 움직여라'며 다시 공을 넘긴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최 부상이 '협상중단'을 선언하지 않고 김 위원장이 조만간 이와 관련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힌 것도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여지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이 판을 깨겠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긍정평가한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최 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에 비해 대화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며 "두 최고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chemistry)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묘사했다.
이는 자신들의 요구에 부응할 이는 트럼프 대통령밖에 없다는 기대를 재확인한 것으로, 지금의 '톱다운' 협상 기조를 앞으로도 유지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 부상의 회견을 통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밝혔던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확실히 하고 있어 대화가 이른 시일 내에 재개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에서도 이번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일 공간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만약 양측의 양보없는 대치가 장기화할 경우 북한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평양 답방을 조기 성사시켜 미국을 압박하거나 핵·미사일 실험을 공식 예고하며 김 위원장 신년사에 등장한 '새로운 길'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북한이 판을 흔들기 위해 실험 재개의 길로 나아가고 미국도 강경기조로 대응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져들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