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인간은 과연 善하고 합리적인가

입력 2019-03-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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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산업부장

낙목한천(落木寒天) 정도인가 싶었다. 하지만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불어닥칠 모양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이 우리 정부에 추가경정예산을 과감히 집행하면 성장목표 연 2.6~2.7%를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현 상태에서는 ‘목표 달성 불가’다.

이들이 쓴 용어도 ‘역풍’ ‘둔화’ ‘먹구름’ ‘금리 인하’ 등 IMF 입장에서 쉽게 쓰기 부담스러운 단어들이었다.

IMF의 우려 중 청와대와 경제 당국의 폐부를 찌른 것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대한 우려 표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그만 꺾을 때도 됐는데 왜 이렇게 아집을 부리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재계 인사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도 기업도 본성이 착하고 합리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은 과연 선(善)한가.

최저임금 급등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편의점 주인이 알바생의 급여를 올려주려면 가게 매출과 이익이 같이 올라야 한다.

임금을 올려준 만큼 노동생산성도 개선돼야 한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려면 교육이나 업무자동화 등이 동반돼야 한다.

편의점 특성상 매출과 이익이 이유 없이 오를 리 없다. 노동생산성 향상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주인이 자기 벌이를 알바생에게 나눠줘야 한다. 이런 착한 주인이 있을까?

사람의 몸 자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경쟁에서 승리하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고 패배하면 옥토파민 비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옥토파민 수치가 올라가면 잠을 못 자고 무기력해진다.

경제 활동에서 승리와 패배는 얼마나 많이 버느냐에 달렸다. 그것도 상대적이다.

똑같은 시간 동안 동일한 일을 하는데 내 수입을 줄이고 종업원 급여를 더 줘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패배다.

자본주의 시대 돈벌기에 혈안이 된 현재 군상의 모습이 아니다. 200여 년 전 영국에서는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기 위해 스피넘랜드(Speenham land)법을 시행했다. 지금과 유사한 구조였다.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했으며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노동생산성은 저하됐고 고용주는 임금을 올리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서울시가 써달라고 조르는 ‘제로페이’를 봐도 똑같은 결론에 이른다. 제로페이를 써서 소비자가 얻는 이득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서울시와 여당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줘야 한다며 소비자를 도덕적 올가미로 낚아채려 한다.

소비자는 묻는다. “당장 내가 얻는 이익이 없거나 미미한데 왜 남을 위해서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 사람은 착하지도 선하지도 않으며 기대만큼 쉽게 희생을 감내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인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1억 원과 로또 당첨으로 받은 1억 원에 대해 사람들은 동일한 가치를 부여할까?

아니다. 똑같은 돈이라도 어떻게 내 지갑에 돈이 들어왔는가에 따라 씀씀이가 바뀐다. 수백억 원의 로또 당첨금을 펑펑 소비해 파산하는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급의 고통을 따져보면 신용카드를 낼 때보다 현금으로 결제할 때 훨씬 더 큰 고통을 느낀다.

같은 10만 원을 써도 당장 내 지갑에서 현찰이 나가지 않으면 쉽게 카드를 긁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원숭이의 조삼모사(朝三暮四)를 비웃을 일이 아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2011년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DVD대여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서 월 9.99달러를 받다가 두 서비스를 따로 분리해서 월 7.99달러씩 가격을 부과하기로 했다.

고객들은 넷플릭스가 꼼수를 쓴다며 비난했고 실제 100만 고객이 떠났다. 그런데 당시 소비자들 대부분은 스트리밍과 DVD 하나의 서비스만 사용 중이었다.

결국, 월 2달러를 아낄 수 있는 셈이었다.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이를 근거로 소비자를 설득해야 했지만, 넷플릭스는 사과하고 가격 정책을 철회했다.

사람(기업)이 선하며 합리적이며 희생한다는 생각은 ‘긍정적 망상(Positive illusion)’이다. 개인 정신 건강에 좋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망상과 환상을 무너뜨린다. 특히 결정적 순간은 내 지갑과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갈 때, 그리고 매월 들어오던 돈이 끊겼을 때다.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때와 장소에 맞춰 간장그릇, 국그릇, 밥그릇을 만드는 ‘틀’이 돼야 한다. 문 대통령도 ‘군자’였으면 한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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