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희의 통상브리핑] 인하우스 통상전문가를 키워야

입력 2019-03-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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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특임교수 , 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필자는 통상을 섬유쿼터 협상을 하면서 처음 배웠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1995년 이후 10년간의 점진적 자유화를 통해 섬유에 대한 모든 수량적 규제가 철폐되어 지금은 섬유쿼터가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선진국 대부분이 섬유 수입을 쿼터로 규제했고, 개도국 수출기업의 입장에서는 쿼터 확보를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저임금에 기초한 우리 섬유산업의 경쟁력이 뛰어나서 쿼터만 따면 현금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큰돈을 벌기 위해 기업인들은 앞다퉈 복잡한 섬유쿼터 제도를 공부했고 최고 전문가가 되어서 수출 일선에서 섬유쿼터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수출에 매진했던 시절이다.

예컨대, 미국에 섬유를 수출하려면 복잡한 쿼터분류 체계, 원산지 기준 등 이론과 품목별 수급 상황 등 시장 흐름에 통달해야 하는데 최소 5년 이상의 실무경력이 필요했다. 공무원들이 세부품목에 대한 모든 정보를 커버할 수 없다 보니 국제협상이 열리는 곳에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출장 가서 전문지식을 전수해 주곤 했다.

그런데 섬유쿼터 협상은 정부 간 협상이기 때문에 공무원 외 민간인의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담판을 벌이는 협상장 옆에 쪽방을 하나 마련했고, 거기서 우리 기업인들이 장시간 대기하면서 협상을 지원해 줬다.

당시 사무관이었던 필자는 협상장과 쪽방을 오가며 우리 기업의 요구사항을 종합해 전달하는 연락병 역할을 했는데, 몸으로 부딪쳐 가면 배웠던 좋은 추억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20년 뒤 필자가 통상담당 국장이 되어 업계에 품목(PSR) 관련 규범 등 협상에 필요한 정보를 문의해 봐도 FTA 전문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정부가 FTA 확대방향으로 통상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기업은 통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 수동적으로 대응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FTA 맺어주면 고맙고, 아니면 할 수 없고” 식으로 대처하면 관 주도 FTA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FTA 체결국가 수가 항상 일본보다 앞서 왔지만, 작년에 일본이 유럽연합(EU)과 FTA를 체결하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발효되면서 역전되었다. 양적 지표에서 밀린다면 이제 FTA의 내용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우리 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해 실제 필요한 구체적인 조건들이 FTA 협정문 안에 담겨야 하는데, 이는 기업이 FTA를 더 공부하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통상마찰은 대부분 로비스트나 관변단체의 주도로 시작된다. 상대국 의회와 행정부에 부당한 압력을 넣어 특정 기업을 대변하는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는 기업 내부 전문가가 있을 때 전문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FTA 협상 경쟁력을 높이고 통상마찰에 잘 대처하려면 기업 내부의 인하우스(In-house) 통상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전문가들이 축적될 때 통상 인프라가 구축되어 통상마찰을 사전에 관리하고 정책결정 이전에 우리 이해관계를 반영시킬 수 있다.

우리 업계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같은 목소리를 낼 때 효과적인 설득이 가능하다. 기업에 전문가가 많고 통상 인프라가 발전된 국가가 바로 통상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 통상정책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하고 다자 통상체제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양자 통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어 기업의 현장 전문가가 더 필요하다. 지난주 미국 정부가 한미 FTA 경쟁 관련 공식 협의를 우리 정부에 처음 요청했다고 하는데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의 통상정책도 현재 FTA 중심의 거시적·제도적 접근에서 탈피하여 미시적·전략적 양자 이슈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가 왜 통상을 하는가? 수출하여 국부를 쌓고 우리 국익과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통상을 하는 것이다. 수출 기업에서 인하우스 통상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이들이 통상의 도사가 되어 정부의 통상정책을 선도하는 시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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