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라고 하지만 공식 명칭은 ‘행동주의 헤지펀드(Activist Hedge Funds)’다. 헤지펀드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실물자산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목표 수익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단기이익을 목표로 하는 투기성 자본이다. 이 펀드에 ‘행동주의’라는 선(善)한 ‘가면’을 씌운 인물은 ‘주주 행동주의’의 대부 로버트 몽크스(Robert Monks)다. 변호사, 사업가, 은행가, 정치가 등을 거쳐 1984년 미국 노동부 연금국장이 됐다.
“기관투자자들이 모든 주요 회사 주식의 거대한 덩어리들을 갖고 있다. 경영진을 조용히 지지하거나 이들의 경영 전략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주식을 파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하게 됐다. 나는 기관투자자들에게 (주주총회 등에서) 안건을 제의하고 통과시키는 것이 기업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연금국장 시절 미국의 연금 관리자들과 가진 회동에서 한 말이다. 주주가 직접 행동에 나서 짠물 배당, 대주주의 경영 횡포 등으로부터 자신의 권익을 지키자는 취지다. 이들은 중장기 발전 계획보다는 경영권 위협, 교체, 경영 간섭 등을 통해 과다한 배당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을 흔들 때마다 표 대결 판세를 가르는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기구인 ISS의 창업주도 몽크스라는 점이다. 1990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해 상충’을 문제 삼아 ISS를 조사하자 손을 뗐다. 이후 사모펀드 베스타 캐피탈(Vesta Capital) 소유로 넘어갔다. 베스타는 1980년대 ‘기업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주인이다. 사실상 선수와 심판이 한편인 셈이다.
지난해 5월에는 엘리엇이 불과 지분 9%만 가지고도 이탈리아 최대 통신사인 텔레콤 이탈리아(TIM) 이사회를 장악하는 파란이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ISS의 역할이 컸다. ISS는 당시 “엘리엇이 추천한 이사 6명으로 교체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내 다른 주주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엘리엇은 경영권을 쟁취한 후 “이제 모든 주주를 위한 지속적인 가치 창출을 보장할 개선된 지배구조를 토대로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됐다”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TIM 주가는 지난해 5월 7일 0.86유로에서 올 3월 20일에는 0.52유로로 떨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자료도 의미심장하다.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경영에 개입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고용은 전년 대비 18.1%, 투자도 23.8%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41.0% 쪼그라들었다.
22일 불행 중 다행으로 현대차·현대모비스 주총에서는 엘리엇이 완패했다. 남은 대표 기업은 한진그룹이다.
법원 판단에 따라 KCGI의 주총 안건이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행동주의 펀드 열풍을 타고 국민연금과 시민단체들은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경영에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대주주 일가가 이들에게 물컵 갑질 등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도덕적 일탈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하며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도덕적 일탈=경영권 박탈’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는 없다.
경영진의 일탈로 인해 기업가치가 현저히 하락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한항공 주가는 물컵 갑질 비난이 컸던 지난해 3월 3만4000원대에서 이달 22일 3만2000원대로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코스피지수 역시 2400에서 2100 선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기업가치 훼손으로 보기는 힘들다. 대한항공은 2015년 3분기부터 14분기 연속 흑자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오일 쇼크와 외환위기 사태, 9·11테러,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도 정부 지원금에 기댄 적이 없다.
시민단체나 행동주의 펀드의 여론몰이에 휩쓸릴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주주행동주의를 주창한 로버트 몽크스는 만년(晩年)에 “기업의 대주주가 경영에 직접 나서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는 태도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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