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에린의 벤처칼럼] 안다는 것과 결정한다는 것

입력 2019-03-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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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 경영학과 교수

종종 미래 지향적 현자들이 4차 산업혁명(또는 미래산업)을 주도할 창업자가 갖추어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학습능력’이라고 강조하는 강의나 글을 대한다. 기술, 사회, 문화의 변화가 무쌍하고, 많은 지식들이 인터넷을 통해 접근이 쉬운 시대에서 요구되는 것은, 전문 지식자산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라 강조하는 것이다. 허나 ‘지식이 아니라 학습능력’이라는 조언처럼 과연 이 두 능력이 서로 상반되는 것이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미래 산업에 참여하기 위해 지속적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동의하지만, 사실 지식과 학습능력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이기 때문이다. 지식 없이는 새로운 지식의 가치를 평가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표현처럼 지식이 없이는 훌륭한 기회가 있어도 그 가치를 알아보기도 이용하기도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격언이 많은 경우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식이 벤처 창업자에게 중요한 이유는 또 한 가지가 있다.

사실 혁신가나 창업가에게 더 강조되는 능력은 학습능력이 아니라 ‘결정능력’이라 하겠다. 실제 창업가를 만나보면 생각보다 본인의 학습능력이 출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결정장애’가 있다거나 자신의 ‘결정능력’이 남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창업가는 별로 본 적이 없다. 또한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도 더 큰 듯하다.

창업가들이 불확실한 일에 뛰어들고 밀고 나가는 것이 그들의 개인적 성향, 즉 위험(risk)을 감수하는 정도가 더 높고 도전적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결정능력이 개인적 위험감수 성향에서 오는 것이라면, 이 능력은 본인이 관여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사실 많은 경우 창업자의 결정능력은 특정 주제나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주제나 상황에 대해 창업가가 얼마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가 창업가의 결정능력에 긍정적 상관관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혁신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동력은 종종 자신감인데, 이 자신감의 근간이 바로 지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식과 결정능력의 관계는 가끔씩 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 추구에 역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음을 동시에 인지하여야 한다. 즉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시작도 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결정도 더 확신적으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밴 필립스(Van Phillips)는 선천적으로 또는 사고나 병으로 무릎 밑 다리가 없는 사람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만큼 운동과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치타(Cheetah)라는 의족을 만들어 성공한 혁신가이자 창업가이다. 애인을 살해하여 재판을 받은 오스카 피스토리우스(Oscar Pistorius)가 2012년 런던 올핌픽에서 역사상 최초로 무릎 밑 두 다리가 잘린 장애인으로 정상 올림픽 400미터 달리기에 사용한 의족이 바로 치타였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잘린 사지의 잔해 부분과 의족이 로봇테크놀로지로 연결되어 사지 조절과 활동성을 증진시키는 혁신 상품 개발을 시작하였다. 신경계와 로봇 기술에 관해 훌륭한 전문능력과 지식이 있는 기술팀으로 개발을 시작하였으나 종종 돌아오는 결론은 가능하지 않으니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이 연구팀을 해체시키고 이전 연구팀만큼은 전문성이 없으나 기술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는 박사과정 학생들과 다시 벤처를 시작하여 성공하게 된다.

그는 이 성공의 이유에 대해 “나는 그들에게 이것(최고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은 가능한 것이라고 했고, 아직 잘 모르는 그들은 가능하다는 내 말을 믿었다”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충분한 전문지식이 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혁신이지만, 출중한 전문지식은 무엇이 걸림돌이고 어디까지가 가능한 선인지에 대한 결정을 더 확신적으로 내리게 함으로써 급진적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경험으로 얻었건, 탁월한 학습능력으로 얻었건, 반복과 주입의 방법으로 얻었건, 본인이 시작하고자 하는 창업 분야에 지식이 없이 뛰어드는 것은 크게 말리고 싶은 접근방법이다. 그러나 동시에 창업가나 혁신가는 지식과 결정능력과의 조심스런 관계를 잘 인지하여야 한다. 위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것이 가능성에 대한 열린 태도(open-minded attitude)와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우리가 미래를 대비하여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은 지식과 열린 태도를 동시에 증진시키는 교육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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