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분청(粉靑), 발라드 혹은 재즈

입력 2019-03-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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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분청, 이제는 일반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우리 옛 도자기. 청자 태토(胎土)에 백토로 분장한 후 투명한 유약을 입혀 구워낸 것으로, 퇴락한 상감청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시대적으로 고려 말부터 제작되기 시작했고 조선 세종 연간을 전후로 그릇의 형태와 문양, 기법이 다양해지며 조선도자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는다. 통상적으로 미술 양식이 오랜 회임 기간을 거쳐 탄생하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처럼 반세기가 채 안 되어 꽃을 피우기 시작한 분청은 분명 이례적인 존재다.

분청은 탄생도 그렇지만 소멸에도 극적인 데가 있다. 조선왕조는 국초의 혼란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드는 15세기 후반에 백자 중심의 관요(官窯)를 운영하고 왕실과 관아의 그릇을 관요를 통해 조달하게 된다. 그로 인해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분청의 생산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은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그렇다면 분청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15세기 초에서 16세기에 이르는 150년 정도, 길어야 200년이 채 안 되는 셈이다. 본격적인 생산기는 세종∼성종 연간의 50~60년 안팎이었다.

그럼에도 청자나 백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장(粉粧)기법과 실용적인 기형,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의미와 특징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키는 조형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시대적 요구 때문이었을까? 도공들의 손길에 변화가 실려 청자처럼 상감기법을 쓰기도 했고, 도장을 찍듯이 찍어 문양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선조(線彫)로 혹은 철분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그려 회화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그냥 백토물에 덤벙 담궈 마감하기도 했다. 유교의 중용과 절제정신이 요구되던 조선 초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처럼 자유분방하고 힘이 넘치는 도자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진정 경이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독특한 분장기법에서 풍겨나는 분청의 느낌은 우리 몸의 율동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한 체취처럼 편안함이 있다. 자유로움과 여유, 해학이 있고 민중의 활력이 넘쳐난다. 단아한 것, 귀족적인 것이 아니라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관(官)이 아닌 민(民)의 아름다움이다. 우리 도자기에 정통한 미국인 친구는 청자나 백자가 클래식 음악이라면 분청에서는 발라드 혹은 재즈의 느낌이 묻어난다고 한다. 정악(正樂)이 아닌 산조(散調)나 별곡(別曲)의 느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분청의 뛰어난 조형미에 대한 미학적 평가도 특별하건만, 아쉽게도 컬렉터나 애호가들은 청자와 백자에 더 가치를 두고 관심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겐 생리적으로 상류사회 취향인 청자의 화려·섬세함이나 백자의 절제된 조형미가 입맛에 맞는 것일까? 그러나 그 입맛을 거부라도 하듯 분청에는 전혀 결이 다른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컬렉션 세계에서 작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소유 욕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전이다. 많은 컬렉터들이 그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떤 무리를 해서라도 작품을 사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내게도 기회가 생긴다면 꼭 소장하고 싶은 것이 분청이다. 분청의 기법과 표현력이 다 좋지만, 덤벙분청에 대한 나의 관심은 각별하다. 모든 조형적 기교의 틀을 벗어던지고 그냥 백토물에 덤벙 담금으로써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이야말로 그 이름처럼 파격이고 최고의 조형이 아니던가! 나는 덤벙분청에서 우리 도자공예에 내재된 무념무상, 무계획, 무기교의 미학적 특질을 확인한다. 당연히 우리 사회의 미의식도 덤벙분청에 구현되어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제대로 평가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사족으로 덧붙인다. 우리 도자기를 보물같이 여기던 일본인들이 처음에는 분청의 때깔과 형태가 청자보다 거칠고 멋대로 되었다 해서 그보다 더 오랜 시기의 것으로 알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강제병합 후 한반도에 몰려와 분묘를 도굴하고 도요지를 파헤쳐 그릇에 새겨진 명문을 판독하고 사서를 뒤적여 분청사기가 조선 초기에 집중적으로 생산된 사실을 알아내면서 분청의 역사가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던가? 그때만 하더라도 역사와 문화유산에 무지하기는 저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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