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양호 경영권 상실, 연금사회주의 우려

입력 2019-03-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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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대표 자격을 잃었다.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 3분의 2(66.66%)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회장 연임안 표결 결과는 찬성 64.1%, 반대 35.9%였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1999년 선친인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에 오른 지 20년 만에 퇴진한다. 특히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를 도입하고,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면서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을 상실하게 된 첫 사례다.

예견된 결과다. 대한항공 주식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고, 2대 주주인 국민연금 지분율은 11.56%다. 외국인 지분 20.50%, 나머지는 기타 주주 몫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총 전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고 조 회장 연임을 반대키로 결정했다. 조 회장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에서다. 해외 연기금 투자자인 플로리다연금(SBAF), 캐나다연금(CPPIB) 등도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를 통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앞서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 등이 연임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

결국 총수 일가의 일탈과 ‘갑질’로 비롯된 문제다. 조 회장의 딸인 조현아의 2014년 12월 ‘땅콩 회황’과 조현민의 2018년 4월 ‘물컵 투척’ 사건 등이 자초했다. 사회적 물의가 빚어지면서 대한항공 이미지는 실추됐고 도덕적 비난이 쏟아졌다. 이어 조 회장에 대한 270억 원대의 횡령·배임 혐의까지 더해져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국민들의 실망이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지고, 신뢰를 잃은 기업에 외국인과 국내 소액투자자들도 등을 돌린 것이다. 조 회장 연임이 무산된 27일 주식시장에서 오히려 대한항공 주가가 오름세를 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의 파장은 크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총수의 경영권을 박탈했다는 점에서다. 재계가 우려하고 있는 ‘연금사회주의’다. 정부·정치권이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 기업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인 것에 다름 아니다.

국내 수많은 대기업의 주요 주주로 올라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한 관치(官治)와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총 등도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경영에 개입하지 말고, 주주가치 제고와 기업의 장기 성장으로 국민 노후자금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재무적 투자자로서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에서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전제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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