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 무렵, 어떤 문학 모임에서 “수양버들 봄바람에 머리 빗는다. 언니 생각이 난다”라는 시를 듣고서 크게 감동한 적이 있다. 지금도 봄이 되면 한 번씩 읊조려 보곤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김영일 시인의 시라고 하는데, ‘김영일’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김지하 시인의 본명이 김영일인데, 혹 김지하 시인이 지은 동시일까? 또 한 분 전라남도 광양 출신 1960년생 김영일 시인이 검색되었는데, 그분의 시일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지은 시인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많이 부끄럽다.
완연한 봄이다. 물이 올라 연둣빛이 짙어진 수양버들이 봄바람에 치렁거리는 모습이 정말 언니의 긴 머리카락 같다. 옛날 언니들은 대부분 아침이면 긴 머리를 빗으로 손질하곤 하였다. 머리빗도 여러 모양이었다. 성긴 것, 촘촘한 것, 반달 모양인 것, 양 날개 모양인 것…. 모양은 달라도 빗살은 다 고르고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다. 이런 빗살을 닮은 무늬를 ‘빗살무늬’라고 한다. 토기의 빗살무늬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빗살무늬토기를 한때는 한자를 사용하여 ‘즐문토기’라고도 했다.
즐문은 ‘櫛紋’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빗 즐’, ‘무늬 문’이라고 훈독한다. ‘櫛紋’이라는 한자어보다는 ‘빗살무늬’가 훨씬 편하고 쉽다. 그래서 ‘빗살무늬’라는 말로 정착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한글과 한자를 자유로이 사용하여 편리한 문자생활을 할 수 있는 복 받은 민족이다. ‘빗 즐(櫛)’ 자를 사용하는 단어 중에는 ‘즐비(櫛比 比:견줄 비)’라는 말도 있다. 빗살에 견줄 만큼 “줄지어 빽빽하게 늘어선”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강가에 즐비한 수양버들은 늘어진 가지 또한 즐비하다. 수양버들 가지처럼 즐비한 언니의 머리는 ‘즐(櫛:빗)’이 있어서 더욱 곱게 빗을 수 있었다. 수양버들은 봄바람에 머리 빗고, 언니는 예쁜 얼레빗으로 머리를 빗었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지금 강둑엔 건물이 즐비하고 골목엔 ‘헤어숍’이 즐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