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인사만 해도 그렇다. ‘7대 장관 배제기준’을 정한 것은 청와대였다. 병역기피·세금탈루·불법적 재산증식·위장전입·연구 부정행위·음주운전·성 관련 범죄 등의 기준을 스스로 마련한 것은 ‘인사파동’을 겪은 과거 정부보다는 인사를 잘하겠다는 선의에서였을 것이다. 결과는 전 정권과 닮은꼴이었다.
야당이 과도한 공세를 펴는 게 사실이지만, 기준에 미흡한 후보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임기 초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앞세워 함량 미달 후보자들을 밀어붙였다. 인사 때마다 ‘야당의 청문보고서 채택 거부→대통령의 장관 임명 강행→정국 경색’의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이번 인사도 처음부터 시끄러웠다.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대통령 지지율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이다. 41%(갤럽)까지 떨어졌다. 여론을 살필 수밖에 없다.
결국 후보자 두 명이 낙마했다. 청와대가 자초한 결과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지명은 정권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비상식 그 자체였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다주택자는 집 한 채를 남기고 파는 게 좋을 것”이라고 ‘협박성 경고’까지 한 정부다. 집 세 채를 보유한 인사를 기용하려던 발상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다. 적어도 부동산 문제와 관련한 도덕적 흠결이 없는 인사를 찾았어야 했다.
두 사람 낙마는 인사 검증 실패를 의미한다. 책임론은 필연적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사과는커녕 “뭐가 문제냐”는 투다. 선의를 앞세운 이중잣대가 아니라면 도무지 해석이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도 출발은 선의에서였다. 길게 보면 맞는 방향이다. 소득 양극화가 심각하다. 소득하위 20%와 상위 20%의 격차가 사상 최대다. 저소득층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을 보존해주는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과 휴식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 또한 대세다. 삼성전자 같은 회사도 야근을 시키거나 지방 가라고 한다면 포기한다는 젊은이들까지 있다고 한다. 주 52시간은 워라밸의 필수 조건이다.
방향은 맞지만 치밀한 사전 준비가 없었던 게 화근이었다. 부작용 등 정책효과에 대한 정교한 시뮬레이션이 생략돼서다. 정권의 선의에 반대여론은 무시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빗나갔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17%나 줄었다. 정부는 결국 국민에게 사과했다. 깊은 고민 없이 선의만 앞세워 정책을 추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례다.
탈원전 정책과 4대강 정비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탈원전 근거로 지역 주민의 안전을 내세운 정부가 우리 원전의 안정성을 강조하며 해외 세일즈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속도조절론이 나왔다. 향후 전기 수급과 재정은 물론 국민 부담인 전기료 인상까지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4대강 보 철거도 마찬가지다. 보의 효용성과 환경 영향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보 해체에 여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졸속 결정을 해선 안 되는 이유다.
불신하는 관료들의 경험을 사지 않아도 되지만 시민단체 인사들의 말만 듣고 정책을 밀어붙여선 곤란하다. 제2의 최저임금 사태를 막으려면 최소한 정확한 사실관계는 가려봐야 한다. 정책 실패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정부는 성과로 말한다. 선의가 정책 실패를 가려줄 수 없다.
국민은 ‘아마추어 실험정부’를 원하지 않는다. 편향된 이념정부는 더더욱 아니다. 국민은 유능한 정부를 원한다. 제대로 된 정책으로 국민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정부가 바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유능한 정부다. 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