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보고서] 온 우주가 도왔던 ‘송인서적’…회생졸업 모범사례

입력 2019-04-17 05:00 수정 2019-04-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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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업계 관행이던 ‘어음’ 폭탄 돌리기…송인서적, 대규모 부도 일으킬 뻔

정(情)으로 죽었지만, 정으로 살았다. 으리(?)로 맺은 관계의 실패도 일종의 경영 실패지만, 지금껏 회사를 키워온 공로를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고 그들도 ‘언젠간 팔리겠지’라는 믿음으로 끊어준 어음이 이 시장을 도미노로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을 테다. 출판 업계의 대규모 부도 사태 위기 최전선에 있던 도매상 ‘송인서적’이 그 주인공이다. ‘책은 살려야 한다’는 주위의 도움과 응원으로 송인서적은 회생법원에서 빨리도 탈출했다. 성장이 정체된 출판 시장에서 송인서적의 변화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임진강에서 뻗어온 갈곡천과 문산천이 이곳을 둘러싸고 있다. 이 주변은 딱히 설명할 ‘시그니처’가 없다. 그저 종으로 가로지르는 경기 78번 국도가 이곳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유일한 도로이자, 이 주변에 자리한 공장들의 수익 출구인 것이다. 그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물류센터. 그곳에서 트레일러 하나가 흙먼지를 날리며 유유히 빠져나갔다. 트레일러가 채운 물건은 78번 국도를 지나, 전국 곳곳의 상점으로 들어가 ‘마음의 양식’을 채울 주인을 기다린다.

▲인터파크 송인서적 공장 전경
▲인터파크 송인서적 공장 전경

2017년 말 ‘인터파크’라는 간판이 이곳 기숙사가 있는 건물 2층 가운데 새롭게 박혔다. 밝은 녹색의 ‘송인서적’ 로고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송인서적은 북센과 함께 출판 도매업을 양분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간판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 공장은 지금쯤 사람 없는 터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새 주인을 맞이하듯 인터파크의 흰색 스티커가 이전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었다.

◇ 웃돈 얹어주며 만들었던 ‘가짜 매출’ = 2017년 1월 2일. 난데없이 송인서적이 1차 부도를 냈다. 연 매출 600억 원을 기록하던 송인서적이지만 만기가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했다. 당시 송인서적의 부채는 680억 원 규모로, 출판사 매입 채무(277억 원), 부도어음(100억 원), 서점 잔고(212억 원) 은행 부채(59억 원), 도서 재고(40억 원) 등이다. 숫자로 보면 감당하지 못할 돈을 이곳저곳에서 끌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송인서적만의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가족과 지인 위주의 경영도 문제였지만 출판업계에 관행처럼 자리한 ‘어음거래’ 폭탄이 이제야 터진 것이다.

출판업의 거래는 ‘출판사→도매상→소매서점 구조’로 이뤄진다. 출판사가 직접 소매서점에 위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도매상을 거친다. 책이 팔리지 않는 만약을 대비해서다. 도매상이 위탁한 책들은 언제 팔릴지 모른다. 잘 팔릴 수도, 한 권도 안 팔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팔릴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직 팔리지 않은’ 책을 두고 가상의 장부를 쓰는 것이 출판업계의 고질적 관행이었다.

도매상이 끊어준 어음은 소매서점에서 여러 유통경로를 통해 흐른다. 어음의 주체가 살아있는 한 가치가 있지만, 부도가 나면 그대로 종이쪼가리가 된다. 송인서적의 부도는 전국 2000여 곳의 소매 서점이 들고 있는 ‘증서’가 ‘증발’하는 의미였다.

어음도 어음이지만, ‘불투명’한 어음 거래도 한몫했다. 도매상이 어음을 끊어줄 때 사정을 봐주곤 했다. 원칙이 없던 셈이다. 도매상에게 소매상은 ‘고객’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거래해 온 ‘친구’이기도 했다. 책이야 감가상각이 크게 되지 않는 물건이기에 그들도 이런 거래가 오랫동안 유지될 줄 알았을 테다. 매대에 올린 책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면서 그들도 얼마나 많은 양의 책을 발주했는지도 잊게 된다. 출판업계의 회계장부가 엉망진창이 된 이유다. 송인서적은 인터파크에 인수된 이후에 공식적인 재무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 “출판업 위해 송인서적 살려야”…대의를 위한 희생 = 2017년 5월 1일, 서울회생법원은 송인서적이 신청한 회생절차를 1주일 만에 초고속으로 인가했다. 앞서 송인서적 출판사 채권단 회의에서 인터파크를 사전 인수자로 선정하고 회생절차를 신청한 영향이 컸다. 사실 부도 처리가 된 업체는 자연스레 청산작업을 밟는다. 그러나 송인서적의 청산은 업계 전반으로 봐도 ‘실익’이 없다는 채권단의 판단이 들어갔고, 채권 상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채권단도, 회생법원도 인터파크의 인수제안에 우려할 이유는 없었다. 인터파크는 같은 업계 종사자일뿐더러, 온라인 출판 시장에서 성장 가세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송인서적 법률상 대표이사였던 장인형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정책위원장은 “채권단의 분위기는 좋았다.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무엇보다 같은 업계 회사가 인수자로 참여한 것이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송인서적 부도는 국가적 관심사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판업계에 대출 이자 비용을 줄여주는 조처를 하기도 했다.

인터파크는 사실상 50억 원으로 송인서적의 지분을 획득했다. 인수방식은 스토킹 호스였고, 인터파크 외의 인수 의향자는 없었다. 인터파크는 채무탕감에 40억 원을, 남은 10억 원은 경영자금으로 쓰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자금을 대여해준 덕에 영업이 중단됐던 송인서적은 3개월 만에 다시 공장 설비를 돌릴 수 있었다.

2017년 10월 27일. 관계인집회 투표 결과, 회생담보권자의 97.95%, 회생채권자의 77.55% 찬성으로 회생계획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한 달 후 회생법원은 송인서적의 회생을 조기 종결했다. 송인서적 지분은 인터파크가 56%, 채권자인 출판사들이 44%를 보유하는 것으로 했다. 도서 반환이 되지 않을 경우 2023년부터 인터파크가 현금으로 변제하게 된다. 이로써 송인서적 부도 대란은 여기서 다시 전환점을 맞게 된다.

회생법원도 송인서적 회생절차를 ‘모범 케이스’로 삼는다. 채무자, 채권자, 인수자 등 모든 이해관계인이 정보공유와 협상참여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회생법원 측은 “중소 출판사들의 사업 계속에 필수적인 유력한 출판유통사를 존속시킴으로써 출판유통업계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며 “향후 인수자가 기존의 출판유통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합리적인 출판유통 관행이 형성될 기회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 급여 두배 늘고 현금성 자산 급증 = 송인서적은 ‘인터파크 송인서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름만큼이나 변화도 컸다. 회생신청 당시 직원 2명에 불과했던 송인서적은 50명 이상의 직원을 다시 채용했다. 아직 대규모의 인력이 채용되지는 않았지만, 송인서적이 부담하는 급여는 회생절차를 졸업한 이후 1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어음구조도 크게 개선됐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의 지난해 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9억4500만 원으로 전년(9억 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어음을 중심으로 했던 거래가 요즘은 현금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수의 효과일까. 대신 내부 거래가 크게 늘었다. 인터파크, 인터파크씨엔이, 인터파크아이마켓 등 계열사와의 거래가 75억 원(매입·매출 합산)에 달한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의 매출이 급증한 배경 중 하나다.

▲1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에 자리한 ‘인터파크 송인서적’ 본사 출하장에 대형 트레일러가 정차해 있다.
▲1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에 자리한 ‘인터파크 송인서적’ 본사 출하장에 대형 트레일러가 정차해 있다.

송인서적을 인수한 인터파크는 같은 회사 부지에 로지스틱스를 함께 운영 중이다. 공장을 바라보고 왼쪽을 돌아 들어가면 출고장이, 왼쪽엔 입하장과 인터파크 입·출고장이 있다. 책뿐만 아니라 쇼핑몰 배송도 이곳에서 담당하는 셈이다. 물류·유통시스템 선진화를 통한 기대감도 있었다. 기존보다 ‘투명성’이 확보된 것으로 평가한다.

부도는 막았지만, 출판 업계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종이에 새겨진 활자를 찾는 이들 때문에 송인서적 공장은 숨을 쉰다. 오늘도 그곳에서 출발한 송인서적 발 트레일러는 경기 78번 국도를 지나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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