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기관투자자의 책임과 주주총회

입력 2019-04-1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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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우리가 연금이나 펀드에 가입하면 기관투자자들은 모인 자금으로 전망이 좋은 우량 회사에 투자한다. 연기금, 공제회, 보험사 및 각종 자산운용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두 고객의 돈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것으로 ‘수탁자의 책임’이 생긴다. 자본시장법은 이들에게 두 가지 의무를 부과한다. 자금의 운용을 맡은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주의의 정도로, ‘투자자를 위해’ 자금을 운용하고 활동할 의무다. 전자를 선관주의 의무, 후자를 충실 의무라고 부른다. 법률 용어라 어렵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그룹의 지시나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고객의 수익을 위해 ‘객관적으로 이해상충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관투자자들은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제반 활동을 수행하고 이를 공표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존재하는 이유다. 기관투자자는 투자한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다양한 관여활동을 수행하는데 그중 ‘의결권 행사’는 해당 기업의 한 해 농사와 과실을 점검하고 다음 기에 이를 경영할 이사진을 구성하는 등 가장 기본적이며 최소한의 활동이다. 기관투자자들은 이러한 활동을 얼마나 활발하게,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을까?

대신지배구조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전체 기관투자자들은 평균적으로 상장기업의 31.1%에 해당하는 회사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투자 매력이 있는 기업에 한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수치만으로 의무 이행의 충실도를 평가할 수 없다. 내용을 보면 아직 90% 이상의 절대 다수 안건에 찬성하고 있지만, 반대 비율도 2016년 2.4%에서 2017년 2.8%, 2018년에는 4.6%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주주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럼 기관이 기업가치나 주주가치 침해가 우려돼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했을 때는 어떨까? 2018년 기준 기금 규모 세계 3위인 국민연금조차 주총 안건 2864건 중 반대 안건이 18.8%, 부결된 안건은 0.9%에 불과하다. 아직 기업에 대한 주주들의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임을, 나아가 최근 대두되는 연금사회주의 논란 또한 과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주의결권 행사 현황과 여건을 좀 더 깊이 살펴보자.

2019년 주총 시즌을 뜨겁게 달군 ‘3%룰 논란’을 파헤쳐 보면 실상을 알 수 있다. 상법상 지배주주 견제 역할을 하는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 시 사외이사와 달리 대주주의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의결권이 3%까지만 제한되는 룰이다. 최근 GS리테일의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65.77%에 달하지만, 의결권이 3%로 제한돼 감사위원 안건이 부결됐다. 이에 기업의 ‘원활한 주총 관리’를 위해 의결정족수와 3%룰을 완화해야 한다는 이슈가 촉발됐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주총을 개최한 상장사 1997곳 중 188개사(9.4%)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됐다는 게 이유다. 이러한 논의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현재 타이밍과 맞물려 더욱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문제를 다루는 순서와 방법을 따져보자. 감사(위원) 안건의 부결을 줄이려면 안건의 원활한 통과나 대주주의 권한을 확대하기에 앞서 독립성 이슈가 없는 후보자를 추천하는 게 먼저 아닐까? 주총 정족수가 부족하다면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부터 확대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주총이 특정 일에 집중됐다면 주주가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이나 문서상으로도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올해 시작한 주총 전 안건별 찬·반 의견 공개는 매우 고무적이다.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주총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주주들의 참여 의지를 높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상으로 기관투자자는 의결권 행사 내역을 1년에 1회, 사후에 공개해도 되므로, 자율규범인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만으로 주총 참여 문화를 장려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주주총회 활성화 과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그 여건부터 마련하자. 기관투자자들이 지닌 최소한의 책임부터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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