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최근 두 금융회사의 주력 자회사인 은행의 노동조합이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조합원의 지분을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노동조합이 우리사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사주 조합의 운영·관리 주체가 사측과 노동조합으로 양분되는 현상이다. 이에 본지는 24일 우리사주 전담수탁기관인 한국증권금융의 오정구 우리사주지원센터장과 만나 이같은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KB·우리는 노조가, 신한·하나는 사측이 관리 = 우리사주제도는 근로자에게 자기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고 보유하도록 하는 제도다. KB금융은 지난달 6일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은 현재 0.55%(약 250만 주)의 지분을 3%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은행 중 최대 규모의 우리사주조합 지분율(6.39%)을 가진 우리은행도 지분을 10%까지 늘려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사주조합 운영방식을 담은 근로복지기본법은 조합의 대표와 임원을 직접투표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현재 KB금융은 국민은행 노조가, 우리금융은 우리은행 노조가 우리사주조합장을 겸임한다. 반면 하나금융은 지주 인사 팀장이, 신한금융은 지주 경영지원 상무가 조합장이다.
오 센터장은 “우리사주조합장을 경영진 혹은 노조가 해야한다는 원칙은 없다. 다만 대의원 총회를 통해 조합장을 선출하면 된다”며 “우리사주 조합원은 대부분 노조 조합원이기도 하기에 자동적으로 노조 측 인사를 선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의 경우 2009년 대법원에 우리사주조합장 지위 청구소송을 통해 인사부장에게 자동적으로 부여되던 권한을 직선제로 선출하도록 바꿨다. 하지만 대표성을 갖췄다고 판단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은행 노조가 우리사주 지분을 위임받아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잡음이 일자,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노조가 우리사주의 권리를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주 우리사주로 은행 노조가 경영참여, 누구 맘대로?=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노동조합’과 동의어로 읽힌다는 점이다. 우리사주의 도입 취지는 ‘노동자’의 복지 증진의 일환으로 일부 노조의 방향성을 공유하지만, 그밖에 노조의 목적과는 갈래가 나뉜다. 사측과 임금단체협상을 두고 대치할 때는 우리사주조합이 오롯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주제도가 각 이권에 휘둘려 움직이는 배경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려있고, 복지보다는 하나의 권력 수단이 될 위험이 존재한다.
김형만 우리사주지원센터 팀장은 “조합장이 노조위원장으로 인식되다 보니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사주조합원들의 역량을 많이 갖고 싶어하는 KB가 그런 사례”라고 밝혔다. 오 센터장은 “내외부와 지분 경쟁이 있으면 일반적으로 사내에선 우호지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강성 노조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사주조합 운영권을 쥐고 있는 은행 노조의 결정에 따라 나머지 계열사의 의중은 반강제적으로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올해 초 KB국민은행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과 파업, 임단협 과정에서 몇몇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오 센터장은 “노조는 세력화하다 보면 사측에서도 배정을 하지 않는다. 지분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니까. 이러면 양쪽 다 손해”라고 말했다. 은행이 카드, 증권, 보험 등의 자회사 조합원들의 요구를 대표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복지 향상’과 ‘재산 증식’,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 우리사주조합은 본래 우리사주운영위원회가 운영하도록 권장되지만 국내 우리사주조합은 규모가 작아 독립되지 못하고 노동조합이나 회사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금융권이 아닌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사주 조합장과 노동조합위원장이 분리돼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금융권 우리사주조합은 운영 주체가 사측과 노동조합으로 양분돼있다. 김 팀장은 “회사와 협의가 잘 돼야 우리사주를 활성화하는데 노조와 같이가면 합의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다”며 “국내에서도 금속노조 등 대부분은 직선제를 통해 조합과 노조가 별도로 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장은 독일 한델스방켄을 롤모델로 꼽았다. 한델스방켄은 성과급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옥토고넨(Oktogonen)’이란 펀드에 적립해 자사주를 구입하는 모든 자금을 운용한다. 각 직원은 60세가 넘어서야 자신의 몫을 찾아갈 수 있다. 옥토고넨 펀드가 계속 자사주를 구입하면서 이 펀드의 한델스방켄은 10.3%의 지분율로 1대 주주에 올라 있다. 비결은 노사 신뢰와 안정된 지배 구조다.
김 팀장은 “해외의 경우 일반적으로 우리사주조합과 노동조합의 역할에 선을 긋는다. 또 해외는 신탁회사에게 운영을 맡기는 방식으로 퇴직금 형태로 운영되지만 한국은 조합방식이란 특별한 방식이 적용되는 것이 다르다”며 “법인세를 내는 기업만 63만 개인데, 이 중 우리사주가 3150개 정도 뿐이다. 신탁으로 가려면 제도의 효율성을 따져야 해서 규모가 아직 부족하고 시장의 여파도 적어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결국 경영진-노동자 간 ‘신뢰’가 관건 = 유럽과 한국 간 우리사주조합 운영 방식의 차이는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비롯됐다. 국내 금융사의 경우 노동조합 자체도 교섭력이 약하다 보니 경영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입히려면 우리사주 지분을 통해 더 강한 교섭권을 가져야 했다. 김 팀장은 “전체적인 교섭권이 노조에 있다 보니 교섭력이 약해 복지 부분은 우리사주를 활용해 노조를 통해 얻어내려는 것이 있다”며 “금융사는 특이한 케이스”라고 강조했다.
독일 등 유럽 대다수의 경우 이미 노동자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모델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우리사주 지분율을 이용해 경영 참여를 제안할 일도 희박하다. 김 팀장은 “독일은 사원 평의회를 통해 리더를 경영 이사회에 무조건 참여하게 돼 있다. 경영에 참여해 직원 복지나 에로사항을 전달하는 것이고, 노조 위원장, 우리사주조합장과는 별개다. 기업 정서 등이 유럽과 달라 현실적으론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경영진과 노동자 간 신뢰가 있어야 직원 복지와 재산 증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센터장은 “우리사주제도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조합만 의지가 있거나 상호 오해가 있어선 안 된다”며 “경영진이 조합원 배려 차원에서 보상으로 우리사주를 대접하는 것이지만 조합과 경영진 간 공감대가 형성되고 협의가 되어야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