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유럽을 분리지배하려는 중국

입력 2019-05-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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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시 황제의 유럽 방문’.

지난 3월 말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두 나라는 극진하게 예우했다. 대제국의 도시였던 로마에서 시진핑은 경제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서방 선진 7개국(G7) 가운데 이탈리아는 유일하게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동참을 선언했다. 미국과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비판이 잇따랐지만 이탈리아는 교역 확대가 목적이라며 이 대형 프로젝트의 지정학적 의미를 애써 평가절하했다. 3월 27일 시 주석이 파리를 방문한 자리에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EU의 공동 대응을 보여주기 위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도 함께 초청했다. 이들 세 지도자는 시 주석에게 무역에서 쌍무성을 강조하며 시장 개방을 재차 촉구했으나 중국 지도자는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위의 사례는 중국의 굴기를 두고 EU 회원국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 중이고 공동 대응은 요원함을 보여준다. 특히 이탈리아처럼 포퓰리스트 정부가 집권 중인 국가는 EU와 대립각을 세우며 친중적인 단독 행보를 부각한다.

시 주석의 유럽 방문을 앞둔 3월 중순 EU는 중국을 체제 경쟁자로 규정하는 전략 문서를 발표했다. 자유무역과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서 EU는 중국과 부분적으로는 협력이 가능하지만 상이한 정치경제 체제 때문에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이 문서는 내다봤다. 특히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자유무역 체제를 최대한 활용하여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는 지식재산권의 공유 등을 요구하며 시장 개방은 약속한 만큼 지키지 않아 미국과 EU의 불만을 키워왔다. 영국을 포함한 EU 28개 회원국은 당연히 중국의 이런 정책에 공동 대응이 원칙이다. 하지만 경제적·정치적 현실은 당위성을 압도한다.

EU 집행위원회는 2년 전부터 중국의 대EU 투자를 점검하는 단일 규정을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라는 범정부 기구가 외국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다. 중국의 통신업체 화웨이의 미국 진출을 저지한 것도 이 위원회다. 반면에 EU 28개국은 이런 기구나 단일 규정이 없고 각 회원국이 자체 규정에 따라 검토한다. 따라서 집행위원회가 단일 규정을 만들어 법제화하자고 제안했지만 주로 중동부 유럽과 남부 유럽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반면에 독일과 프랑스, 덴마크 등 북유럽은 EU 전체에 적용되는 단일 규정 제정을 원한다.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의 비세그라드 4개국은 중국의 투자를 적극 환영해왔다. 2010년부터 경제위기를 겪다가 지난해 국제 자금시장에 복귀한 그리스는 항만과 공항 등 기간산업체의 일부 지분을 중국에 매각했고 경제위기를 극복한 포르투갈에도 중국 자본이 많이 진출했다. 중국은 ‘16+1’이라는 발트 3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 그리고 발칸반도 5개국(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로 비EU 회원국)을 망라하는 경제협력체를 만들어 이들을 공략해왔다. 중국은 이들에게 경제협력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EU 차원의 공동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달 9일 브뤼셀에서 EU와 정상회담을 마친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크로아티아로 가서 16+1 정상회담을 했다. 그는 이들과의 지속적인 경제협력 강화를 천명했다. 중국이 이들에게 공들인 만큼 외교적인 효과는 컸다.

2016년 7월 헤이그 주재 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유엔의 해양법을 위반한다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과 일본은 곧바로 중국에 국제법을 존중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EU는 사흘 만에 나온 성명에서 중국을 거명하지 않은 채 분쟁의 평화적 해결만을 강조했다. 이 성명서 작성에 관여한 한 EU 외교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투자에 크게 의존해온 헝가리와 그리스, 폴란드 등이 중국을 거명하는 데 반대했다”고 털어 놓았다.

유럽 통합을 주도해오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는 EU 차원의 외국인 투자 검토 단일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경제지원과 외교적 지렛대로서 중국을 놓치 않으려 한다. 이런 갈등으로 E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외국인 투자를 검토하는 신사협정만 만들었다.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데 중국의 대EU 분리지배 전술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물론 중국은 EU와 글로벌 이슈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며 분리지배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중국의 굴기에 대한 EU의 공동 대응 어려움은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 EU가 아직까지도 ‘정치 초짜’임을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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