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물에서는 숭늉을 마실수 없다

입력 2019-05-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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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훈 중기IT부 기자

지난 4월 3일 밤 11시. 세계 최초로 5세대 이동통신(5G) 가입자가 나왔다. 4일 미국 버라이즌이 상용화를 한다는 정보에 예정일보다 이틀을 앞당긴 신속 대응이었다. 정부 독촉에 첩보영화급 ‘작전’을 수행했다는 업계의 후일담이 나올 정도였다.

정부는 ‘세계 최초’에 방점을 찍었고 5G 시대의 청사진 홍보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6년까지 관련 산업 생산 180조 원, 일자리 60만 개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세계 5G시장의 선도자로서 세계가 우리를 뒤쫓게 하겠다 장담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세계적 선도자로서의 국내 5G 생태계는 ‘빛 좋은 개살구’ 수준이다. 앞장서서 5G시대에 동참한 30만 가까운 ‘얼리어답터’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서울과 전국 광역시급 대도시의 기차역, 터미널 등 기반시설에서조차 제대로 안 터지는 5G폰에 속만 터진다. 소도시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지방도로에서 스포츠카 모는 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가 5G 전국망 확충에 잡은 기간은 앞으로 3년이다. 2011년 4세대 LTE가 처음 나왔을 때도 전국망이 깔리는 데 2년 이상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활용 기반도 갖추지 않은 채 ‘최초’만 집착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5G를 통한 수익은 결국 콘텐츠에서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선점에 공들인 만큼 콘텐츠 개발과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해소도 보조를 맞췄어야 했다.

서비스 시작 후 한 달 뒤에야 콘텐츠 개발에 3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투입한다는 정부의 발표에서 순서가 틀렸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발빠르게 움직여야 할 콘텐츠 해외 수출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세계 최초 개통이 아니라 세계 최대 콘텐츠 보유를 목표로 해야 한다. 선점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파이를 최대한 차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MP3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을 처음 개발한 것은 애플이 아니다. 사용자 친화적 콘텐츠에 아기도 쓸 수 있을 정도의 직관적 사용법으로 시장 선도자의 입지를 굳혔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최초 스마트폰인 IBM사의 ‘사이먼’은 박물관의 유물이 됐고 한 때 스마트폰의 ‘맹주’였던 리서치인모션(RIM)의 블랙베리는 도태됐다.

정부가 진짜 독촉해야 했던 것은 세계 최초 타이틀 획득이 아니라 5G 생태계 조성과 콘텐츠 개발이다. 우물에서는 숭늉을 마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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