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간다] "이력서부터 미용‧심리상담까지"…노숙인‧장애인 찾은 일자리 박람회

입력 2019-05-13 17:41 수정 2019-05-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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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개최한 '서울시 취약계층 일자리 박람회' 가보니

▲서울시가 주최한 취약계층 일자리 박람회에 300여 명의 구직자가 모였다. 이들은 각 부스를 돌며 해당 기업 정보를 얻고 있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서울시가 주최한 취약계층 일자리 박람회에 300여 명의 구직자가 모였다. 이들은 각 부스를 돌며 해당 기업 정보를 얻고 있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이력서를 쓰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새로운 도전 앞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인적사항을 이력서에 기재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눈과 귀를 안내자에게 집중하며 순서에 맞춰 자신의 이력서를 작성했다.

13일 서울시가 서울광장에서 주최한 ‘취약계층 일자리 박람회’에는 300여 명의 노숙인‧장애인이 몰렸다. 경비‧청소‧세차업체 등 40개로 된 채용관과 심리상담‧법률상담‧목공체험 등으로 구성된 16개의 자활프로그램관이 서울광장을 에워쌌다. 노숙인‧장애인들은 흐린 날씨에도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올해로 4회 차인 서울시 취약계층 일자리 박람회는 처음으로 ‘맞춤형 일자리 연계방식’ 체계를 도입했다. 먼저 구직자의 학력‧적성‧건강상태 등을 사전에 조사한다. 이후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업체에 인적사항을 전달하고 사업체는 해당 구직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하면 면접을 진행한다. 현장에서 면접이 진행되는 것은 전과 동일하나 구직자의 개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업체와 연결해주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에 연결된 사업장이 없더라도 현장에서 면접 및 취업상담도 받을 수 있다.

김나예 서울시 자활지원과 주무관은 “예전에는 취약계층을 ‘취업’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구직자와 사업체가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해 원하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했다”라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이어 “구직자가 취업 뒤에도 꾸준하게 일해야 일정 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고, 사업체도 숙련 노동자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맞춤형 일자리 연계방식’을 들고나온 배경이다.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검게 그을린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홍인석 기자 mystic@)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검게 그을린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홍인석 기자 mystic@)

◇채용은 물론…사회공헌까지

현장에서 만난 사업체들은 이곳에서 채용한 사람들이 ‘일을 잘한다’라고 말했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숙자 은평성모병원 미화반장은 “우리는 처음부터 올해까지 4번째 부스를 차렸다”면서 “여기서 채용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모두 일하고 있고 또 그런 사람을 채용하고 싶다”라고 기대했다. 그는 "경험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맡은 일을 꾸준하게 해주는 사람을 일자리 박람회에서 많이 만났다"라고 덧붙였다.

사회공헌 차원에서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업체도 있었다. 인터넷으로도 많은 구직자를 만날 수 있지만 취업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없는 취약계층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 심인보 카앤피플 차장은 “사실 작년에도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했지만, 적임자가 없어 채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번에 채용 시스템이 바뀌어서 기대감도 높다. 일하는 사람과 사업장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몇 번의 가위질에 구직자의 머리가 단정하게 정리되고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머리카락을 자르는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몇 번의 가위질에 구직자의 머리가 단정하게 정리되고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두발, 복장에서 심리상담까지…달라진 채용 현장

올해 일자리 박람회에는 처음으로 이‧미용서비스도 제공했다. 노숙인과 장애인은 두발 및 복장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데 한계가 있었다. 서울시가 올해는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나섰고 반응도 좋았다. 미용 서비스를 받은 김모(56) 씨는 “업체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머리를 자르고 깔끔한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붙는 것 같다”면서 만족해했다. 그는 “당당하게 면접을 보고 오겠다”라는 포부도 밝혔다.

심리 상담을 위한 부스도 있었다. 이 역시 올해 처음 제공되는 서비스다. 취약계층의 단순 취업에서 머무르는 게 아닌, 사회인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고 나온 최모(59) 씨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평소에 우울증 증세도 있었는데 전문 상담을 받으니 한결 낫다”면서 “한 번 심리 상담을 받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고 밝게 웃었다.

▲구직자들이 업체가 제공한 기업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일을 할 수 있다'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구직자들이 업체가 제공한 기업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일을 할 수 있다'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취약계층은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이력서도 안 써본 사람도 많거든요. 이번 취업 박람회는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싶었고요.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병기 서울시 자활지원과장)

취약 계층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경제활동이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손을 맞잡고 세상으로 끌어 올려주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자리 소개를 넘어, 이들이 더 자신 있게 세상 속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공감의 토대가 이번 박람회를 통해 더 확산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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