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대기업 편향 경제구조 개혁이 필요한 까닭

입력 2019-05-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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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여 년 동안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경제성장을 추진해 오면서 소수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그 결과, 시장에서 자본과 자원이 대기업에 기울어져 쏠리는 현상이 나타남으로써 대·중소기업의 격차가 심화되어 경제활력을 위축시키고 있다.

대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산물로 등장한다. 경쟁력이 우수해 시장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덕분에 많은 고객의 선택을 받아 매출이 증가하고 규모와 점유율이 커져 대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시장지배력과 독과점이 과도해지면 오히려 혁신을 억제하고 경쟁을 약화시킨다. 이런 양면성을 갖는 대기업에 관한 정책은 어느 나라이건 ‘자유시장 경쟁’과 ‘독과점 규제’라는 양날의 칼을 갖고 접근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과거 개발시대에 시장경쟁보다는 정부의 정책 지원에 의해 규모를 키웠고, 그 결과 정경유착이라는 업보를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재벌이라는 오너 족벌 경영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경영 투명성이 매우 낮다. 사실상 대기업과 관련해 발생하는 많은 문제는 대기업 자체가 아니라 기업 총수와 그 가족들에 기인한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일감 몰아주기도 사업다각화라는 기업 논리보다는 족벌 경영 관점에서 설명이 된다. 재벌이 3~4세로 넘어가면 먹여 살려야 하는 직계와 방계가 수십 명이 된다. 이들에게 사업영역을 하나씩 나누어 주어야 하니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되는 것이다. 글로벌 수준의 국내 대기업이 골목상권의 소상공인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는 오너 가족 누군가를 위해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 동기가 깔려 있다.

이처럼 재벌이 지배하는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하에서는 대기업 이외의 곳에서 성장잠재력이 활성화되기 어려울뿐더러 급격히 변화하는 미래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현재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기술혁신은 산업과 시장의 지평을 단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초불확실성’이라고 불릴 만큼 미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하향식의 선택과 집중에 의한 산업정책과 경제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고위 정책가와 최고경영자가 미래 산업을 선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집중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

미래의 변화가 어디에서 오고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확실한 답을 찾아 거기에 자본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겠는가. 가 보지도 않았고 지도(road map)도 없는 길을 초보운전자가 대형 트럭을 몰고 가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투자 및 경영성과 평가기준이 엄격해 성과가 불확실한 원천 신기술 개발에 투자하지 못한다. 급진적 혁신기술은 실패 확률이 높으며 투자에 비례하여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기술이 사업화된다고 하더라도 초기에는 시장이 작아 수익을 내지 못한다. 지속적인 투자와 오랜 인내 끝에 변곡점을 지나 대중 수요가 확대될 때부터 매출과 이익이 수직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고위험의 모험사업을 대기업이 직접 내부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특히 재임기간이 짧은 전문경영인은 장기간 대규모 자본이 소요되는 투자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오너 경영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 대기업이 성장해 온 것이 오너의 과감한 투자 덕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의사결정 구조가 갖는 리스크는 매우 커지게 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벤처 열풍이 불었을 때, 대기업의 경영자 2~3세들이 혁신기술에 꽂혀서 대대적 투자를 단행했으나 성공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가볍고 창의적인 중소기업이 선도하는 상향식 혁신성장이 적합하다. 대기업은 미래 산업의 씨를 뿌리는 다양한 중소기업과 협업해 투자와 시장화를 지원하는 후원자 역할을 맡아 리스크를 분산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중후장대한 장치산업에 대한 자본투자를 이행, 경제성장의 선봉역을 수행해온 대기업은 후선으로 물러가고 대신 전면에 창의적 기술과 혁신적 사업모델로 미래 산업을 열어가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 대기업 편향적 경제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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