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민들에게 ‘푸짜르(Tsar, 군주)’라 불린다. 듣는 이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단어겠지만 러시아인들은 칭찬 섞인 별명으로 쓰는 듯 하다.
2008년 케냐로 향하던 우크라이나 국적 상선 페이나호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이 배에는 T-72전차 30대를 비롯한 러시아의 수출용 무기가 실려 있었다. 해적들은 악명 높은 해적항으로 배를 옮긴 뒤 화물들을 꿀꺽했다. 이 쯤에서 멈췄다면 별일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이 부은 해적들은 배에 타고 있던 러시아인 선원들의 몸값을 요구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러시아는 그 말을 기다린 것처럼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푸틴은 협상 대신 키프로급 대순양함대 파견을 명령했다. 이 함대는 러시아가 미국 항공모함 선단과 맞짱을 뜨기 위해 만들어둔 전투함선단으로, 대공·대함 미사일까지 탑재하고 있었다.
저승사자 방문 소식에 겁먹은 해적들은 황급히 “몸값 안줘도 된다”며 인질을 석방했다. 하지만 불곰국 함대는 방향타를 돌리지 않았다. 러시아 해군은 사로잡은 해적들을 작은 수송선에 옮겨 태운 뒤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푸틴의 명령을 기다렸다. “가라, 타이푼” 한마디와 함께 함포들이 불을 뿜었고, 집중포격을 맞은 조각배와 해적들은 용왕님을 만나러 떠났다.
이 일이 전해지자 서방언론들은 푸틴과 러시아 정부를 맹비난했다. 그러자 러시아 해군장교가 그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테러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면서?”
이후 한동안 소말리아 해적들은 러시아 국기를 단 배가 보이면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 버릇 개 주기는 역시 쉽지 않은 법. 2년 뒤 러시아 유조선이 납치되는 일이 또 일어났다.
2010년 5월 소말리아 해적 11명은 중국으로 향하던 러시아 유조선과 선원 23명을 납치했다. 이후의 일은 두 말하면 숨차다. 푸틴은 구축함 마샬 샤포쉬니코프호에다 이번엔 특수부대 ‘스페츠나츠’까지 함께 보냈다. 스페츠나츠는 크림반도 사태 당시 단 하룻밤 사이 우크라이나 정부 관청과 공항, 군 기지 등을 모두 점령하고 우크라이나군 전체를 무장해제시킨 인간 타노스들이다.
선원들을 전원 구조하고 선박에 실렸던 8만 6000톤의 원유도 확보한 러시아 해군은 “해적 두목은 그 자리에서 사살했고 나머지 10명은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2년 전 페이나호 사건 당시 “잔인한 짓”이라던 서방의 비난을 의식한 듯 보였다. 하지만 푸짜르가 어디 남의 눈치나 보는 인물이던가. 러시아는 해적들을 항법장치나 동력장치 등은 고사하고 먹을 것도 없는 고무보트에 태웠다. 그리고 위치추적용 소형신호기 하나를 보트에 던져 넣은 뒤 해안에서 500km 넘게 떨어진 공해상에 떨어트려 놨다. 이 지역은 몸길이 10m가 넘는 백상아리 군락지라고 한다. 그들을 바다에 버리고 온지 한 시간여 뒤, 인근에 대기하던 러시아 해군은 추적기 신호가 끊기는 것을 확인한 뒤 철수했다.
“풀어주라”며 들끓던 서방 언론들은 다시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러시아 장교는 태연하게 응답했다. “풀어줬잖아?”
프랑스 특수부대가 납치된 한국인을 구출해낸 일을 놓고 감사와 애도, 분노 등 다양한 반응들이 뒤섞이고 있다. 누구 탓인지는 차차 알게 될 테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흥분할 일이 못 된다. 오히려 기억해야 할 일은 리비아에서 납치된 지 10개월이 되도록 소식이 없는 우리 국민이 있다는 점이다. 모 건설사 기술자로 알려진 그는 2018년 7월, 리비아 서부 지역 건설현장에서 무장단체에게 납치됐다. 우리 정부가 언론에 엠바고를 걸며 숨기다가 페이스북에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하는 동영상이 올라오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납치된 줄 몰라서 못 구했다는 이번 인질과는 달리 핑곗거리가 없는 일이다.
우리에겐 ‘아덴만의 여명’의 주인공 청해부대가 있고, UDT, SSU, 707특공단 등 스페츠나츠 못지않은 특수부대가 즐비하다(예비역들 워~워~). 그런데 군사전문가들이 뽑는 글로벌 특수부대 순위에서 우리 군의 등수는 기대에 못 미친다. 그들이 지적하는 한국군의 약점은 뜻밖에도 ‘실전경험 부족’이다. 유일한 분단국에 수시로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군대에겐 다행일까 치욕일까. 구해달라는 국민이 있고 상대는 테러범이다. 당연히 신중해야하고, 이유는 모두가 안다. 허나 “가라, 타이푼”이 한편 부러운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