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테크놀로지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에 전 세계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불똥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이 발빠르게 화웨이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 데 이어 영국과 대만 기업들까지 동참하면서 화웨이의 고립이 가속화하고 있다.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NTT도코모와 KDDI, 소프트뱅크 등 일본의 3대 이동통신사들은 전날 화웨이의 최신 기종 ‘P30’의 발매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화웨이 제품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영국 통신사 EE 역시 화웨이의 첫 5세대(5G) 스마트폰인 ‘메이트20X’에 대한 사전 판매를 중단했고, 또 다른 대형 이통사인 보다폰도 화웨이의 5G 스마트폰 사전 예약을 받지 않기로 했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거래 제한 조치에 한국의 동참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우리정부 쪽에서 특별한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 보복을 우려해서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처럼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에서 중간에 끼어 한국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KT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화웨이 스마트폰의 재고가 소진되면 판매를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KT 측은 “검토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구글이 지난 20일 화웨이와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전 세계 이통사들이 화웨이와 선긋기에 나선 모양새다. 구글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화웨이 스마트폰이 구글의 기술 지원을 받지 못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미국 정보통신 보호를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언 행정명령에 사인하고, 미 상무부가 화웨이와 그 계열사 68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린지 일주일 만의 일이다. 미국의 제재를 어기면 벌금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글로벌 부품 업체들도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에 나섰다. BBC에 따르면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은 직원들에게 화웨이와 진행 중인 계약, 지원 서비스, 기술 논의 등을 포함해 모든 업무를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일본 파나소닉도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발표했다. 파나소닉은 미국 기업들로부터 조달받은 부품과 기술을 활용해 새 부품이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화웨이에 공급해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화웨이와 연관된 글로벌 부품 시장 규모는 700억 달러(약 83조 원)에 이른다. 화웨이의 핵심 공급업체는 92곳인데, 이 가운데 25곳이 중국 기업이며, 일본이 11곳, 대만이 10곳, 한국과 홍콩이 각각 2곳이다. 주요 아시아 공급업체로는 일본에선 소니, 무라타제작소, 도시바메모리, 후지쯔 등이 있으며,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은 난야테크놀로지와 TSMC 등이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들 기업은 미국의 우방국에 속해 있다며 화웨이와 거래를 끊으라는 미국의 압박에 직면해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