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중독 질병 판정] 게임업계 “콘텐츠 산업 뿌리째 휘청… 세대 갈등 심화될 것” 반발

입력 2019-05-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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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책위 출범 “부정적 인식 가진 의료계 불신”…일각선 “중독성이 흥행 좌우… 업계 알면서 모른 척” 지적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이에 보건당국은 WHO의 결정을 토대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관련 기준 마련에 돌입한다. 다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할 수 있을 만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업계 반발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게임중독 기준 국내 마련 시급 = WHO는 게임중독 질병분류 판정 기준을 지속성과 빈도, 통제 가능성 등 큰 틀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단순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만으로는 질병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선 게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손상돼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양한 부정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1년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이는 게임중독으로 판단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게임으로 인해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등의 사례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WHO는 전체적인 큰 틀만 제공했을 뿐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WHO의 이 같은 결정에 국내에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보건복지부는 국내에서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의료계는 의학 전문가 등과 함께 게임중독 개념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진단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임중독 기준이 모호해 정해진 틀이 없어 주먹구구식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질병과는 다르게 게임중독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지 않아 기준을 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게임을 한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이는 중독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라며 “하지만 국내에선 명확한 기준이 없는 데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의료계가 기준을 잡기 때문에 전적으로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게임산업 뿌리가 흔들릴 수 있어” 우려 =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게임중독 질병분류 판정을 반대해 왔다.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는 29일 오전 11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열고 본격 활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출범식에서 공대위는 게임중독 질병분류 판정이 국내 게임 문화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칠 사안으로 보고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공대위는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학회와 공공기관, 협단체 53곳과 31개 대학 등 총 84개 단체로 구성된다.

특히 공대위는 성명서를 내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한 유감과 국내 도입 반대를 주장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공대위는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권리인 게임을 향유하는 과정에서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으며, 게임 개발자들과 콘텐츠 창작자들은 자유로운 창작적 표현에 있어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됐다”라며 “게임을 넘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일대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임과 콘텐츠 산업의 뿌리가 흔들 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또한 근거가 없어 계류되거나 인준받지 못했던 게임을 규제하는 다양한 법안이 다시 발의되는 사태가 발생될 수 있으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의 증가로 인해 젊은이와 기성세대 간의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다”라며 “공대위는 게임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최대한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역시 “WHO의 입장에 대해 굉장히 실망스럽고 충격적이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은데 조급하게 지정을 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현재 게임중독 질병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라며 “앞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면서 기준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게임이 중독 증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게임업계가 이미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가 새로운 상품을 기획할 때부터 충분히 ‘중독’될 수 있는지 여부를 중요한 흥행 요소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정신의학계에서는 중독을 해당 중독물질이나 중독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중대한 지장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소소하게는 게임을 하기 위해 등교나 출근을 하지 않거나 밤을 새거나 하는 것부터 시작해 게임과 현실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게임머니를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일은 충분히 중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평가다.

업계 일부에서는 업계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는 목소리도 불거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 ‘중독요소’가 무엇인지가 신작 기획 단계에서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라며 “출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중독 요소를 점검하고 충분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경영진 차원에서 더 큰 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귀띔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이미 충분히 게임중독을 인지하고 있지만 게임산업 전반에 걸쳐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모른 척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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