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속으로] 시세차익과 ‘유죄 추정의 원칙’

입력 2019-05-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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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영 변호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형사소송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다.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람은 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이다. 국민의 기본권이고, 형사소송법의 대원칙 중 하나다. 그런데 증권범죄에 대한 수사나 재판에서는 그 원칙이 간혹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부동산을 구입했다가 수요 증가나 개발로 인해 시세차익을 보았을 경우에는 세금을 납부하면 그만이지, 불법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증권시장과 자본시장에서는 ‘투자 이후 시세차익이 생기면’ 바로 유죄로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본래 자본시장은 금전적 이득에 따라 투자자들이 움직이는 경향이 높고 이 같은 추세는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다. 이익의 사회적 환원 등 이타(利他)적 목적으로 투자자들이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시장에서 금전적 이득을 보았다면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처럼 투자 선구안 등을 인정해줘야 하는데도 우리나라는 오히려 반쯤 범죄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투자 결과에 대해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작동한 시장에서 투자했다가 손실이 났는데 투자자가 결과에 불만을 품고 증권회사나 금융당국에 항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정상적으로 자본시장에서 시세차익 등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면 이는 불법도 아니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금전적 이득은 투자의 목적이고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세차익이 발생한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나 재판에서, 특히 단기간에 많은 시세차익이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그러한 ‘이익의 발생’ 자체가 부당하다거나 불법적일 것이라고 전제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즉 불법적 방법으로 시세차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예단할 때가 제법 많다.

특히 최근에는 투자조합, 사모펀드, 주식담보를 이용한 기업 M&A에 대해서는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다. 해당 조합 등에서 투자한 종목으로부터 시세차익을 얻게 되면 유죄라고 추측하는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자본시장의 생리나 작동원리에도 명백히 반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을 수사(재판)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금감원 고발, 검찰 기소로부터 유죄가 쉽게 추정된다. 사실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이 국내 증권범죄 조사에 관해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사기관이 아니라 행정조사를 할 뿐이며, ‘(위탁받은) 업무 처리’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거의 무혐의(미조치)를 하지 않는다. 이는 사법기관처럼 실체적 진실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물론 금감원은 예비조사 단계에서 무혐의가 될 만한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걸러짐).

금감원은 ‘고발, 통보’ 외에도 ‘의뢰성 통보, 참고사항’이라는 다소 애매하거나 모호한 사안까지 모두 수사기관으로 이첩한다. 즉 애매하거나 모호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돌아가 무죄(무혐의)로 간주돼야 하는 사건들을 금감원에서는 유죄로 보고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사법기관에서는 금감원 고발이나 통보 사건에 대해 무조건 유죄로 예단하고 수사나 재판을 진행하면 절대 안 된다. 이는 개인적인 바람이 아니라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대원칙이고 금감원 사건처리 실무 사례에 비춰도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돈의 가치 자체는 중립인데 보는 시각은 개인에 따라 감성적인 경향이 있다. 시세차익이 생겼다고 나쁘게 볼 게 아니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수사나 재판에 임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최근에 금감원 직원의 특별사법경찰관 지명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보았는데 이러한 당부는 조사 권한이 더욱 강력해질 금감원 자본시장조사국 임직원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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