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간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장애인 거주시설서 거리로 나온 그들

입력 2019-06-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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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10년 전 시작된 탈시설 운동을 언급했다. 그는 목소리가 잠길 때마다 더 큰 목소리로 준비된 내용을 말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10년 전 시작된 탈시설 운동을 언급했다. 그는 목소리가 잠길 때마다 더 큰 목소리로 준비된 내용을 말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살아가고 싶은 대로 살고 싶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마이크를 잡은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때로는 힘있게, 때로는 잠긴 목소리로 장애인 거주시설이 폐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상에 내려와 자리로 돌아가던 그는 흐르는 눈물을 계속 훔치고 있었다.

4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를 위한 조례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는 200여 명의 장애인과 활동가,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각종 인권침해는 물론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감옥 같은 곳’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전동 휠체어에 '꽃동네에는 꽃이. 사람은 지역사회로!'라고 적힌 깃발을 꽂았다.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꽃에 비유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전동 휠체어에 '꽃동네에는 꽃이. 사람은 지역사회로!'라고 적힌 깃발을 꽂았다.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꽃에 비유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장애인들의 바람은 간단하다. ‘비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 우리도 하고 싶다’라는 것. 이를 위한 첫 시작이 장애인 주거시설 폐쇄다. 거주시설에서는 정해진 대로 먹고 자며 생활할 수밖에 없어 활동에 제약이 많다. 비장애인처럼 늦잠을 잘 수 없을 뿐 아니라, 장애인 기초수급비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설의 ‘관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문지완 씨는 “대단한 것을 얻고자 거주시설 폐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비장애인이 생활하는 것 그대로 장애인도 동등하게 누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각종 인권침해도 거주시설 폐쇄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일부 거주시설의 경우, 센터장이 권력 피라드미드 최정점에서 모든 것을 지휘하고 결정하는 구조여서 장애인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일이 잦다. 이들 관리인이 휘두르는 폭력과 폭언은 장애인들의 일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성범죄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김용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뉴스로 나오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알려지지 않는 사실은 더 많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사람이 사람들과 지역사회에서 어울리면서 사는 건 당연하다. 지금처럼 한정된 폐쇄공간에서 수용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여 명의 장애인과 활동가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탈시설'을 주장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200여 명의 장애인과 활동가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탈시설'을 주장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그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인 덕에 변화도 생겼다. 2009년 처음으로 ‘탈시설-자립생활’ 쟁취를 외치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그 결과 정책이 없었던 서울시는 서울시복지재단 산하에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탈시설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체험홈, 자립생활가정 등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탈시설 정책을 마련했다. 서울시 시설 거주 장애인 수도 3205명에서 10년 새 2524명으로 줄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올 초 ‘2차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는데, 1차 탈시설 계획(600명)보다 목표치가 줄었다. 서울시는 매년 60명씩 5년 동안 300명의 탈시설을 지원할 계획이다. 1차 때와 비교하면, 시설을 나올 수 있는 장애인들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 조례제정을 촉구하는 동시에 5년 이내에 800명의 탈시설 지원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활동가는 “장애인들이 단지 시설을 벗어나 ‘알아서 살아라’가 아닌 그들이 살 수 있는 주택, 정착금, 활동보조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면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정착하고 살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배형우 서울지 복지기획과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이날 참석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서울시가 열심히 하겠다. 늘 건강하시라'라는 말을 장애인들에게 연신 건넸다. (홍인석 기자 mystic@)
▲배형우 서울지 복지기획과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이날 참석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서울시가 열심히 하겠다. 늘 건강하시라'라는 말을 장애인들에게 연신 건넸다. (홍인석 기자 mystic@)

서울시는 미진함을 인정하면서 더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형우 서울시 복지기획과장은 “서울시가 장애인 관련 예산을 많이 늘렸고 관련 정책도 시행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면서 “추가로 정책을 만들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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